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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제1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식… 황교안 “文정권 헌정유린 묵과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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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만류에도 삭발 강행… 총선 앞 최고조 강경투쟁 모드

한국일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 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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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청와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항의하는 ‘삭발 투쟁’을 단행했다.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은 초유의 일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만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삭발을 강행해 조 장관을 둘러싼 정국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한국당은 검찰수사의 피의자인 조 장관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참석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정기국회 일정 합의도 거부했다. 조 장관 반대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한 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은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황 대표의 삭발식은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조 장관 파면 1인 시위를 벌였던 황 대표는 이날 연휴 뒤 첫 최고위원회의에 정장이 아닌 짙은 남색 점퍼 차림으로 등장했다. 투쟁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의미였다. 모두발언에서 “문 대통령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낸 황 대표는 이후 약 20분 간의 비공개 회의에서 직접 삭발을 제안했다고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표현”이라며 “그런 뜻에서 당대표가 결단한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 삭발식이 예고된 오후 5시 전부터 이미 청와대 분수대 앞은 한국당 의원들과 지지자, 취재진 수백 명으로 가득 찼다. 무대는 없었다. 황 대표가 앉을 빨간 야외용 의자 뒤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삭발투쟁’이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점퍼 차림을 한 황 대표는 5시쯤 나 원내대표와 함께 등장해 말 없이 의자에 앉았다. 다소 긴장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사회를 맡은 전희경 대변인이 “황 대표의 결단이 하나의 움직임이 돼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물결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애국가가 흐르고 여성 이발사가 등장했다. 담담한 표정의 황 대표는 늘 끼고 있던 안경과 점퍼를 벗었다.

삭발은 약 7분동안 진행됐다. 눈을 감고 임한 황 대표는 내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하다 눈 감기를 반복했다. 의원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봤고, 일부 여성 지지자는 눈물을 보였다. “황교안”을 연호하는 소리가 곳곳에 퍼졌다.

이후 어색한 민머리로 마이크 앞에 선 황 대표는 “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 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제1야당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들께 약속 드린다. 저는 저의 투쟁은 결단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조 장관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 검찰의 수사를 받아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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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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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황 대표가 스스로 삭발에 나선 데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모처럼 찾아온 대여 공세 기회를 이대로 놓쳐선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권 비판 동력을 계속 살려가기 위해선 국회일정 보이콧, 장외집회를 뛰어 넘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오랜 여당 생활로 ‘웰빙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국당으로선 대표가 직접 강경 투쟁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절박함을 부각시키고, ‘강한 야당’으로의 이미지 전환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조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방’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최근 당 안팎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황 대표의 결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삭발식 전까지만 해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임명된 상황인데 효과가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황 대표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며 리더십이 다시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준표 전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황 대표의 삭발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야당을 깔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꼭 보여주기 바란다”고 치켜세웠다.

이미 조 장관 임명 강행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은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청와대는 이날 황 대표 삭발식 전 문 대통령의 만류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강기정 정무수석이 황 대표를 만나 문 대통령의 염려와 걱정에 대한 말씀을 전달했다”며 “삭발에 대해 재고를 요청드린다는 의견도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대표는 “조 장관을 사퇴시켜라. 조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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