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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모진 시절 살아낸 이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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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3) 아름다운 시절

감독 이광모(1998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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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은 이광모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 헌사처럼 바치는 영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감독의 방법론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1952~53년 작은 마을이라는 시공간은 물론, 감독은 카메라를 고정한 채 롱숏과 롱테이크만으로 120분의 러닝타임을 채운다. 여기에 상황을 설명하고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는 자막이 삽입될 뿐이다. 역사와 과거를 다룬 한국 영화의 드라마투르기가 멜로드라마를 토대로 영웅적 캐릭터나 다소 과장된 감정을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아름다운 시절>은 그 모든 것과 거리를 둔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의 풍경과 일상 문화를 기록하듯 담아낸다. 화면 안에선 당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 군상이 오가고, 그 안에 ‘미군정-전쟁-휴전’으로 이어지던 때의 공기가 오롯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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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이 드러내는 전쟁 직후 남한 사회, 즉 살벌한 반공주의와 미국이라는 새로운 군림자와 사람들에게 앙금처럼 남아 있는 대립의 흔적 등은 거리를 둔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냉정하면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처절하고, 담담하면서도 고통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면서 적절하다. 오로지 생존이 목적이었던 시절엔 비극이었을 사건들은, 시간이 흐르고 거리를 둔 채 바라보면 그렇게라도 생존해야 했던 자들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름다운 시절>은 이른바 외국의 ‘아트필름’과 ‘작가영화’의 영향을 받았던,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미학적 경향성을 반영한다. 특히 대만의 허우샤오셴 감독이 만든 역사 영화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스타일을 한국 현대사와 결합한 건 나름의 성과를 거둔 실험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임권택, 정지영, 박광수, 장선우 등의 감독이 개척한 이념적 지평은 이 영화에서 독특한 스타일의 드라마로 소박한 결실을 맺었다. 안타까운 건 이광모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첫 작품에서 멈춰 버렸다는 것. 그에겐 할 말이 남지 않았을까? 기다려본다.

김형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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