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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100년간 굳어진 언론 관행과 질적으로 다른 저널리즘 모델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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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개별 언론사 차원으론 극복 불가능한 위기 놓여 있어

진보·공영 포괄한 연대·협업 네트워크로 미래 열어야

윤석열 청문회 진술, 녹취파일과 180도 달라 보도 결정

탈퇴했던 회원들 재가입, 우리 진정성 이해했길 바라

‘조국 사태’ 보도 넘치지만 차별성·공익성 찾기 어려워

‘모든 소스는 오염돼 있다’는 탐사보도 경구 되새겼으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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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전’은 ‘언론 대전’이기도 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기사 건수를 두고 오차범위 수십만을 거뜬히 건너뛰는 주장이 엇갈리지만, 적어도 사안의 중요성에 견줘 보도량이 부족했다는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단독’을 남발하는 기사들과 ‘복붙’(복사해 붙이기)이나 다름없는 기사들이 뒤얽힌 미디어판은 흡사 뜨거운 습기를 쉼 없이 빨아들이며 회오리치는 태풍이다.

여기 ‘고요한’ 매체가 하나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뉴스타파>는 한달 넘게 현재진행형인 이번 대전에서 단연 예외다. 한 건도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태풍의 눈’은 본디 고요하다는데, 그 안에서 크게 한방 준비하고 있지 않은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러나 최근 뉴스타파가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린 이유는 따로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말미에 윤 후보자의 위증을 뒷받침하는 녹취 파일을 보도해 비난을 샀는데, 이제 보니 대단한 통찰이었다는 식의 상찬이다.

탐사보도전문매체로서는 굳이 속도전에 뛰어들 유인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자신들의 보도가 동일한 수용자들로부터 짧은 시차를 두고 양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하지는 않았을까. 뉴스타파의 사례는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이 문재인 정부 들어 종종 맞닥뜨리는 ‘고민’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를 한걸음 비켜서 지켜본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실험’에 대한 자기 평가와 조국 사태 보도를 비롯한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뉴스타파가 지난달 새로 입주한 서울 퇴계로의 독립 사옥에서 17일 오전에 진행했다.

― 사옥이 짐작했던 것보다 훌륭하다. 정식 출범(2013년 2월) 6년 만에 보란 듯이 독립 사옥을 지은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 같다.

“정확히 말하면 사옥을 마련한 건 아니다. 독립언론의 연대·협업공간을 만들었다. 그런 취지에 맞게 후원회원과 시민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까지 거쳐 이 공간의 이름을 ‘뉴스타파 함께센터’라고 지었다. 우리도 여기 입주해서 일하는 개념이다. 그동안 꾸준히 돈을 모았고, 대출도 받았고, 3억원 가까이 크라우드펀딩도 받았다.”

― 어쩌다 이런 구상을 하게 됐나?

“2년 전 독일에서 열린 탐사매체 대표자 워크숍에서 독일의 비영리 탐사보도전문매체 코렉티브(Correctiv)가 유럽 지역 비영리 독립언론의 협업공간 건립을 추진한다는 발표를 듣고 귀가 솔깃해서 계획을 세우게 됐다. 코렉티브는 이제 건설예정지 매입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쨌든 실행은 우리가 먼저 한 셈이 됐다. 우리나라엔 작업공간이 없어서 굉장히 어렵게 일하는 좋은 독립언론이나 1인 매체, 독립피디, 독립감독이 많다. 예를 들어 최근 국가기록원이 영상국가기록물로 지정한 <나고야의 바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임용철 피디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일하는 독립언론인인데, 뉴스타파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지원사업 공모에 채택돼 제작비를 지원받고 후반 편집 작업을 여기에서 마무리했다. 우리도 처음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 더부살이로 시작해서 두차례 더 이사를 해야 했다. 안정적인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동아투위는 1975년 이후 우리나라 자유언론 투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한 언론사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100명 넘는 언론인이 거리로 쫓겨나고, 40년 넘게 투쟁을 이어온 경우는 전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 이분들이 여전히 매달 정기모임을 하고 있는데, 단 한번도 사무실이 없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했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거의 매일 사무실로 오셔서 회의도 하시고 글도 쓰신다.”

― 비영리 탐사전문매체를 표방해온 지난 6년이 간단치 않았을 것 같다.

“비영리 모델, 회원제, 탐사보도전문매체 등이 모두 한국에선 처음 시도하는 형태였다. 처음엔 대부분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제 뉴스타파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광고와 협찬을 전혀 받지 않고도 언론기관 운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점이 가장 뿌듯하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적 이슈라고 판단되면 단일 아이템이라도 1, 2, 3년 이상 계속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도 자랑스럽다. 경영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경우의 수를 놓고 심사숙고한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방화벽이 흔들린 경우는 없었다. 구조적으로 경영이 저널리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조직이다.”

― 회원이 급감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지난 대선 때와 얼마 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 때였다고 들었다. 보도 전에 예상했었나?

“권은희 의원, 노영민 의원 관련 보도 등이 더 있다. 윤석열 후보자 보도 전에도 후폭풍이 있으리라 당연히 예상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기자와 장시간 인터뷰한 녹음 파일을 우리가 갖고 있고, 그 인터뷰에서 윤 후보자가 전 용산세무서장 윤우진 사건과 관련해 반복적으로 발언한 내용과 청문회 자리에서 발언한 내용이 180도 달랐다. 그걸 아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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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총장 녹음 파일 보도로 탈퇴했던 회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 이후 재가입하고 있다고 하던데.

“윤석열 총장 건 보도 이후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왜 아군의 등에 칼을 꽂느냐’, 이런 반응이었다. 우리는 비영리·비당파를 표방한다. 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시 돌아오는 회원들이 그런 부분에 공감을 해주시는 것이라면 당연히 반갑다. 우리 회원이 3만여명이다. 전체 규모로 봐서 특정 보도 때문에 반발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대다수 회원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게 더 무섭다. 사실 직간접적인 인연도 없이 지갑을 열어 피 같은 돈을 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수많은 사람이 뒤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기도 하고,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 요즘 진보언론들이 정치성향이 전혀 다른 양쪽 독자들로부터 ‘샌드위치’ 처지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수용자들이 쇼핑하듯이 언론을 진영 논리로 소비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의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힘있는 기관과 그쪽 사람들 목소리만 옮기는 공급자 중심주의는 역설적으로 언론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다. 언론 수준을 높이는 것 말고 답이 없다고 본다. 우리 경험으로 보면 조세회피처 보도나 세월호 보도, 친일파 보도를 했을 때 회원이 크게 늘더라. 보편적인 정의의 문제에 공감한 분들이 반응한 거라고 본다.”

― 그런데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는 뉴스타파가 보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던데.

“우리는 종합 뉴스나 일일 보도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현안에 뛰어들지 검토할 때는 얼마나 차별화된 보도를 할 수 있을까를 꼼꼼히 따져본다. 조국 장관 관련 보도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고, 단독을 단 기사도 셀 수 없이 나오지만, 솔직히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확실한 문서나 기록, 관련자의 실명 증언 같은 건 거의 없었다. 우리도 살펴보기는 했지만 아수라장에 숟가락 하나 정도 얹는 보도는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게 도대체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가. 한방 크게 터뜨릴 거라는 소문도 있다.

“그런 소문은 나도 들었다. 낭설이다. 우리 특성에 맞게 구조적인 문제,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타이밍을 맞추긴 힘들겠지만, 이번 사태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시의성 측면에서 주목받는 기사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탐사보도전문매체여서 할 수 있는 선택 같기도 하다. 김 대표가 종합일간지나 지상파 보도책임자라 해도 그럴 수 있겠는가?

“나도 지상파 출신이라 그쪽 생리를 잘 안다. 다들 당일 뉴스에 목숨을 건다. 왜 꼭 그래야 하나. 사실 속보경쟁은 시청자나 독자가 볼 때는 업자들끼리의 우스꽝스러운 경쟁일 뿐이다. 특히 조국 사태에서 보듯 고위공직자 검증 보도에 속보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쏟아낸 수많은 보도 가운데 과연 국민의 주권 행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가 얼마나 될까 반문해봐야 한다. 속보보다는 정확하게 확인된, 그리고 공적으로 의미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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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나 시청자들이 기다려줄까?

“용기를 내서, 좀 기다려달라고 해야 한다. 영미권 탐사보도 기자들 사이에 경구처럼 회자되는 말이 있다. ‘모든 소스는 오염돼 있다’라는 말이다.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가 특종 욕심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는 취재원을 무분별하게 인용해 엉터리 보도를 일삼았다. 부시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전쟁을 벌여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사실을 상기해보자. 지금 우리가 핫이슈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정치권과 언론이 만든 허상이다. 언론이 거기에 끌려가기보다 정확하고 진실에 최대한 부합하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죽어가고 있는 저널리즘이 살아남기 위한 기본 전략이기도 하다.”

―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크다.

“그 자체만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긴 힘들다. 피의자의 방어권과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이다. 얼마나 공적인 사안이고 공적인 인물인지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사실 많은 보도가 피의사실 공표에 기인한 보도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조국 관련 보도만 보고 판단하기도 힘들다. 다만 검찰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은 분명히 차단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탐사보도협회(IRE)가 펴낸 교본에 ‘언론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생존하는 동물과 같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생각하면 이 책 구절이 늘 떠오른다.”

― 끝으로 이 뜻깊은 공간에 대한 장기 구상을 들려달라.

“독립언론이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진지, 교두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언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도 믿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 배경에 고질적인 정파성과 상업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100년간 형성되고 고착된 현재의 언론 생태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델의 등장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서 자유롭고, 오랫동안 굳어진 취재·보도 관행에서도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이 모여서 네트워크를 이루고, 연대와 협업을 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지금의 위기는 <한겨레> 같은 개별 언론사 단위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과 공영방송을 포괄하는 연대와 협업이 절실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MB 정부서 탄압받던 KBS 탐사보도팀장 출신

김용진 대표는 누구?

1987년 <한국방송>(KBS)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탐사보도협회(IRE)에서 1년 동안 방문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탐사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이후 탐사보도팀장을 맡아 한국방송의 탐사보도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을 그도 비켜 갈 수 없었다. 탐사보도팀이 해체되고, 그는 울산으로 쫓겨갔다.

2011년 9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 25만건에서 ‘KOREA’가 들어간 1만4165건을 찾아내 번역하고 정리해, 이듬해 1월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개마고원)을 펴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해직언론인 중심으로 꾸린 프로젝트팀 <뉴스타파>에 2013년 합류해 탐사보도전문매체로 탈바꿈하고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방송 사장 세평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서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 일을 정리하고 나서 얼른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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