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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한국문학 ‘분단’ 고착 위기… 北작품 번역·출간 지원 나설 것”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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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에서 남북 문학 ‘따로따로’ / 통일 지향 코리안문학 회복 어려워 / 美 출판사들, 北문학 번역에 열 올려 / 우리가 앞장서 ‘하나의 틀’ 만들어야 / 문학은 원어민이 번역해야 ‘맛’ 살려 / 번역아카데미 통한 인력 양성 빛 봐 / 노벨상 타려면 국제적 공인 얻어야 / 번역 역량 강화에 적극적 투자 필요

세계일보

바야흐로 노벨상 시즌이다. 노벨재단은 다음달 7일부터 시작하는 2019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일정을 밝혔다. 매년 이맘때면 시나 소설을 읽지 않던 이들도 한국 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해는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 문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탓에 올해는 2명을 한꺼번에 발표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한국문학 국제교류 총괄본부’ 역할을 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한국 문학뿐 아니라 그 기저에 깔리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해외에 번역하고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까지 맡는 이 기관이 현재 어느 정도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당면한 과제들이 무엇인지 김사인(63) 한국문학번역원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외국문학을 전공한 역대 원장들과는 달리 한국문학 전공자 출신인 김 원장은 “남북 간 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오는 과정에서 북한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세계무대에서는 문학조차 남한문학 따로, 북한문학 따로인 것처럼 한국문학이 고착될 상황”이라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해외에서 한국문학마저 ‘분단’되면 다시 수습하기 쉽지 않다”는 전제 아래 “해당 언어권 출판사들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한문학 번역출간 과정에서 한국문학번역원에 도움을 요청하면 한국문학 통합의 고리를 만드는 차원에서 심의를 거쳐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이 들어오고 있는 좋은 분위기”라면서 “이런 때일수록 한국문학(문화) 번역 역량 강화에 장기적 관점으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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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노력해온 한국문학 범주 설정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번역원의 시야를 해외동포문학, 예컨대 미국 국적이면서 영어로 문학을 하는 이창래나 이민진까지 넓히면서 ‘이게 다 한국문학이야’라는 느낌을 주는 건 옳지 않다. 다만, 그들이 현실적으로 난처하고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나가야 한다. 예컨대 재일작가 김석범이나 연변작가 김학철, 이런 분들의 작품이 영어나 불어로 번역 출판되도록 꾸준히 적은 비율로라도 노력해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조심스럽지만 이북 지역 문학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북한문학 해외 출간까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이유가 있는가.

“최근 한반도에 대해 서방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가지는 건 BTS(방탄소년단)와 북한이다.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평화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여러 수준에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북한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최근 2∼3년 사이 고조돼 있다. 우리가 한국문학이란 이름으로 해외에 소개해온 앤솔로지(선집)를 구성하고 있는 건 해방 이전까지는 남북 공통이지만, 이후에는 남한 작가들에 국한돼 있다. 이런 여건에서 미국이나 서방 출판사들이 우리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북한문학 엔솔로지를 낼 수 있는 상황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문학이라고 내 왔던 것들은 자동적으로 남한문학이 되고, 그쪽에서 내는 북한문학 앤솔로지는 우리 쪽 개입이나 협의 없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북한문학 선집이 되고 만다. 세계무대에서 남한문학 따로 북한문학 따로인 것처럼 문학이 고착될 위기인 셈이다. 한번 나뉘어서 자리가 잡히면, 지난 몇십년 동안 노력해온 하나의 언어,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지향하는 하나의 코리안 문학을 회복하는 건 굉장히 어렵게 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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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북한문학이 우리와 무관하게 해외에서 독자적으로 출간되는 작업은 어느 정도 진전됐으며, 한국문학번역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컬럼비아대학 출판부를 비롯한 몇몇 미국 주요 출판사에서 백남용의 ‘벗’을 북한문학을 전공한 교포학자를 번역자로 선정해 북한과 직거래로 출간하는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 미국에서 북한문학 전문가는 상종가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미국 출판사가 신청해오면 심의를 거쳐 지원할 생각이다. 북한 문학도 우리 것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에서 하나의 한국문학을 유지하고 협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이 굉장히 시급하다. 세계무대에서 한국문학을 하나의 윤곽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선제적인 노력을 할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쪽밖에 없다.”

―꾸준히 생산되는 한국문학을 세계인과 소통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번역의 역할이 필수적이고, 번역원은 그 중심에 있다.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량은 지금 단계에서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보는가.

“여기에 와서 통렬하게 깨달은 게 있다. 처음에는 예산을 대폭 늘려서 20세기 한국문학 선집 20∼30권 기획하고, 그러면 몇 년 안에 미진한 것들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아주 잘못된 생각이란 걸 느끼는 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술적 향기나 감동을 살려서 해당 언어권 대중 독자 눈높이로 설득력 있게 번역을 수행해 낼 수 있는 인력이 태부족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 수준의 번역이 가능해진 건 최근의 일이다. 번역원은 지난 10여년 동안 ‘번역아카데미’를 통해 매년 20명씩 원어민을 선발해 2년 동안 장학금을 주어 길러냈다. 이런 밑불을 땐 보람으로 근년에 현장에서 호소력을 가질 만한 번역이 가까스로 하나둘씩 출현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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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대학원들도 있는데 한국문학번역원이 특별히 번역가 양성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다.

“통번역대학원은 실용이 우선이고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문학, 예술 번역은 다르다. 한국인의 삶과 역사와 문화의 결이 몸에 어느 정도 스며 있어야 가능한 섬세하고 예민한 영역이다. 문학 번역은 원어민 출신이 해야 한다. 문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해외 현지 불만이 가장 큰 한류 번역에도 이런 역량이 필요하다. 이걸 위해 우리가 운영해온 것이 ‘번역아카데미’인데, 선발 인원을 1년에 1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 번역원을 도와 달라는 차원이 아니라, 교육기관을 따로 독립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적으로 투자해서 한국 콘텐츠의 다국어 번역 역량을 장기적으로 키우고 관리해야만 한다.”

―한국 작가들의 해외 수상이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이 그 정점에 있다. 수상 가능성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올 들어서는 김혜순 시인이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하고, 황석영의 ‘해질 무렵’이 맨부커인터내셔널상 후보로 오른 것을 비롯해 일본에서는 조남주를 필두로 한국문학 붐이 일고 있다. ‘문예’(文藝)라는 일본의 중요한 문학 계간지는 가을호에 한국문학특집을 게재해 아주 이례적으로 3쇄를 찍었다. 여기에 방탄소년단 K팝이 결합되면서 한국문학 입장에서는 뭔가 물이 들어오는 분위기다. 좋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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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조차 서구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자세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한국문학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촌스럽게 무슨 노벨문학상 타령이냐는 시각도 있지만, 한국의 여러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사실 노벨문학상은 굉장히 갈급한 부분이 있다. 나라로 치면 주관적으로는 충분히 국민도 영토도 있는 중요하고 당당한 나라인데 유엔 가입 같은 국제적 승인을 확보하지 못하면 어려운 입장인 것처럼, 노벨상이라는 것이 그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큰 판도 속에서 독자성을 갖는 하나의 문학적 실체로 국제 공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연결된다. 그런 차원에서 국민들의 허기랄까 갈증이 공감되고, 번역원 같은 기관이 그 문제를 가지고 애써야 한다고 본다.”

―한국문학의 ‘국제적 공인’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노벨상 자체에 매몰돼서 조바심 내기보다 우리 문학의 시야나 우리 문학이 담보하는 문제의식의 폭과 깊이,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 독자들을 설득하고 감동시킬 만한 시야의 깊이와 폭을 확보하고자 노력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시리아 난민 문제 같은 것에 대해 열린 공감을 하고 함께 앓는 가운데 우리 문학이 어른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면 그런 상은 저절로 오지 않겠나 싶다. 한국문학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대담=김신성 문화체육부장

정리=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사진=서상배 선임기자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 수료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인으로, ‘한국문학의 현단계’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활동 시작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편저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제7대 한국문학번역원장(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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