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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27만원짜리 노인 일자리, 정중히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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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업 찾은 퇴직자 4인 '인생 3모작' 경험 전해]

"호텔나와 웨딩카 운전회사 창업, 직원 100명으로 늘리는게 목표

농협 은퇴후 6년전 텃밭 가꾸다 도시농업 컨설턴트로 활동

눈앞에 있는 일자리보다는 10년이상 할 수 있는 일 찾길"

"'꼰대'라는 말 다들 아시죠? 새 직업을 찾을 때 제일 중요한 게 젊은이들에게 이 소리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1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베레모에 나비 넥타이를 맨 노경환(69)씨가 새로운 직업 만들기에 대해 열띤 목소리로 강의를 이어갔다. 노씨는 결혼식 날 신랑·신부를 태우고 미용실·결혼식장·공항까지 웨딩카를 운전해주는 서비스 업체인 '더쇼퍼'의 대표다. 30년 넘게 호텔리어로 일한 그는 2년 전 창업에 나섰다. 직원 8명의 평균 나이는 60세다. 그는 "직원을 100명으로 늘리고 평균 연령도 더 높이는 것이 내 사업 목표"라고 했다.

내 일자리는 내가 만드는 '인생 3모작'

이날 강연은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인생 3모작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은퇴 후 단순 재취업 등을 '2모작'이라고 한다면 '3모작'은 자신만의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노 대표와 함께 농협에서 퇴직한 뒤 도시농업전문가로 변신한 오영기(66)씨, 고인(故人)이 생전에 사용하던 집기 등을 유족 대신 정리해주는 유품관리사 김석중(50)씨, 학교 등 공공시설 환경 개선을 위해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홍성화(58)씨 등 4명이 경험담을 나눴다.

조선일보

웨딩카 운전서비스업체를 창업한 노경환씨가 신혼부부들을 태운 웨딩카 앞에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은퇴 후 자신만의 직업을 찾아낸 노씨 등 4명은 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인생 3모작 포럼’에서 100여명의 청중에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전했다. /노경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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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기씨는 6년 전인 2013년 서울 강동구에 10평 규모의 텃밭을 마련해 상추·열무 등 채소 15종을 재배하고 있다. "나도 좀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늘면서 도시농업 컨설턴트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김석중씨는 장례 후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유품관리사'다. 도시가스비와 관리비를 정산하는 것부터 고인의 유품 정리와 폐기까지 한다. 고령사회인 일본에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2010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홍성화씨는 목공·페인트공·조경관리사 등을 모아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명함에는 '협동조합 이사장'이라고 썼다. 그가 낡고 위험한 주거 시설 보수나 학교 환경 정비 등 일감을 따오면 다양한 기술을 가진 조합원들이 출동하게 된다. 홍씨는 '주거교육환경안정관리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했다.

"정부가 만든 '노인용 일자리' 정중히 사양합니다"

이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부의 노인 일자리에 지원하기보다는 조금 더 오래 고민하더라도 경력과 취미·특기를 살린 일자리를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새 일자리를 찾는 건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값진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홍성화씨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자리보다는 10년 이상 활동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오영기씨는 "정부가 노인을 위해 공공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생색 낼 수 있겠지만, 그런 일자리가 결코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한 달 27만원짜리 어린이 놀이터 지키기 등의 일자리 44만여개를 만들고 "노인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고 홍보하는 정부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인들을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 취급하는 일자리는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했다.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장은 "인생 1모작과 2모작을 취업과 재취업이라고 표현한다면 요즘은 스스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인생 3모작을 꾸리는 은퇴자들이 많다"고 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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