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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한현정의 직구리뷰]돈으론 못 사는 개성의 품격…‘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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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미 늦은 거 같고 망한 것도 같고, 사는 게 재미없고 모든 관계들이 부질없다고 생각될 때. 사람을 믿기는 힘든데 안 믿자니 너무 외로운, 온갖 해로운 생각들이 뒤덮으려고 할 때, 속는 셈 치고 한 번 외워보라고 권하고 싶은, 현대판 마법의 주문 같은 영화, 독창적인 힐링 미스터리 ‘메기’(감독 이옥섭)다.

이 발칙한 인권 영화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일명 ‘19금 엑스레이’ 에피소드로 포문을 여는데 함축과 비유, 풍자와 날카로운 직관력이 기가 막힌다.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 한 장으로 발칵 뒤집어진 병원, 왜 이런 사진이 누구에 의해 유출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찍힌 사람이 누구인지, 혹시나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닌지 모두가 불안에 떨 뿐이다. 불법 촬영 범죄와 심각한 인권 침해로 사회문제가 된 한국 사회의 관음증을 경쾌하고도 신랄하게 비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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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취업난에 빛을 잃어가는 청년들, 데이트 폭력과 인간 관계의 균열 등 믿기 힘들지만 현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들이 영화 속에 담겼다. 불신의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쉴 새 없이 화두를 던지고 비판하면서도 어루만지고 응원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우리의 구원자, 어항 속 ‘메기’다.

무심한 듯 촘촘히 툭툭 내던져진 아이디어들은 하나 같이 재기 발랄하고도 살아 숨 쉰다. 일상성을 지닌 가운데서도 강한 개성을 잃지 않는 에피소드들은 일견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에피소드들은 각 등장 인물들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인 ‘믿음이 쌓이고 깨지고 또다시 조합되는’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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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불신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감각적인 영상미, 살아 숨 쉬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배우들의 빛나는 열연이 더해져 중독성 강한 독보적인 맛을 완성시킨다.

메기가 있어야 할 곳이 어항이 아닌 것처럼, 그저 익숙해졌을 뿐 사실은 어울리지 않는 지금을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현실 속 고민과 고통 속에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모든 현대인에게, 의심의 싱크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 그만 구덩이에서 나와!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들다면 내 손이라도 잡던지!”라며 무심한 듯 강렬하게 외치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알고 보면 천사 같은, 독보적인 아우라의 영화다. 오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9분.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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