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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디자인 다큐멘터리-디자인 배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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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업 디자인과 건축계 거장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상영이 계속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간 이 분야에 관련한 전시들이 세간의 인기를 끈 것이 그 발화점이다. 즉 이제 우리 사회의 일원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디자인을 유의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거장들의 일생을 투영한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시티라이프

1, 2 이 시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업 디자이너로 칭송 받는 디터 람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디터 람스’. 그의 디자인 철학을 배우러 갔다가 인생을 배우고 왔다는 평이 많다. 3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에 등장하는 수풍석박물관의 모습. 땅과 바람과 빛을 연구해 디자인한 그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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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중시하는 사회. 이 말은 곧 ‘인간적인 사회’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겠다. 기능적인 물건 하나를 만드는 데 최적의 동선과 디테일과 선과 질감을 추구하는 것. 그 안에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최적으로 녹여 내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적인 행위’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말로는 ‘정신을 중요시하는 사회’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그랬다.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고, 정직하며, 환경 친화적이고, 영속적이다”고. 이 정도면 거의 정치 공약에 가깝지 않은가.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법령을 제정할 때의 원칙 같은 단단함마저 느껴진다. 사실 많은 산업 디자이너들은 디터 람스와 같은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물건을 디자인해 왔다. 한 지역 사회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자연의 물성과 풍습을 파악해, 그들의 일상에 편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줄 혁신적이고 유용한 제품을 디자인했던 것이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 면도기, 계산기, 라디오, 커피 메이커 등이 단순히 수염을 잘 깎고, 계산을 편리하게 해 준 것만은 아니다. 사용하는 순간 손에 잡히는 그립감과 컬러와 선의 간명함은 기분이 절로 좋아지게 해 ‘삶의 질’을 높여 주었다. 그건 디자이너의 정신이 그걸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자이너의 의도와 정신과 철학이 선명한 제품은 삶의 동반자가 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내내 함께하는 반려 제품이 되는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쁜 사회, 무조건 급성장만 원하는 산업 사회 구조에서는 반려 제품의 디자인을 인정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생, 사회, 역사가 하나의 고리이자 가치라는 것을 인지하는 성숙한 구조에서는 철학이 담긴 물건과 평생 함께 산다는 것이 가능해진다. 최근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다큐멘터리가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의 변화, 그 증거다. 다큐멘터리 ‘디터 람스’에서 주인공인 그가 말한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자인을 할 수 없다. ‘Less is better’는 디자인 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관통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리는 디자인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배우게 된다. 그게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그러니 디자인을 중시하는 사회야말로 인간을 깊이 생각하는 사회이자, 정신을 중요시하는 사회일 수밖에. 비단 산업 디자인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건축은 또 어떤가.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과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 그는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가능케 한다. 또한 그의 작품 방주교회, 수풍석(水·風·石)박물관, 포도 호텔 등에 깔린 건축가의 마음과 정신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더욱 긍정적인 측면은 향후 다큐멘터리 관람객들이 우리 곁의 다양한 건축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에 촉수를 세울 것이란 점이다. 디자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상영 중인 요즘. 하나의 건축물, 하나의 물건에 얽힌 스토리를 소중히 경청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관객이 많아진 사실은 반갑다. 이처럼 귀와 눈과 마음을 열어 디자인을 바라보는 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디자인은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하준사, 기린그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96호 (19.09.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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