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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Science&Market] 살균제 피해 검증, 동물실험으로 하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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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피해 증상 규명하는 대상은 사람

래트·제브라피시로 확인은 오류

정밀의료진단 통해 원인 찾아야

서울경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던 청문회는 속이 텅 빈 강정이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구제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해 기업과 무책임한 관료들의 막말과 궤변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만 헤집어놓고 말았다. 얄팍한 잇속이나 챙기겠다고 특조위를 기웃거리는 전문가들의 행태도 절망적이다.

특조위가 자랑하는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를 통해 55개 군부대가 가습기살균제 2,474통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피해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를 찾아내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는 무려 998만통에 이르고 지금까지 환경부에 피해 사실을 등록한 피해자가 6,521명이다. 그중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피해자는 855명뿐이다. 단순히 비율로 치자면 특조위가 국방부의 협조로 0.61명의 새로운 피해 후보자를 찾아낸 셈이고 그 후보자가 환경부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확률은 13%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이유가 없는 자료다.

일부 업체가 살균 성분으로 사용했던 염화벤잘코늄(BKC)의 호흡기 독성을 확인했다는 주장도 황당하다. BKC를 넣은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한 피해자는 단 2명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마저도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고 한다. 특조위가 왜 그런 일에 신경을 썼는지 궁금하다.

특조위가 세월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피해 사실이 처음 드러나고 8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더 많은 피해자를 찾아내겠다는 노력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확인은 정치적인 적폐청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조위가 해야 하는 일은 공청회에서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현재 환경부에 등록된 피해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합리적으로 인정해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부터 그렇다. 아직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하겠다고 고집하는 환경부와 독성·보건 전문가들의 오류를 분명하게 바로잡아줘야 한다. 피해자들은 동물실험에 사용하는 래트(쥐)나 제브라피시가 아니다. 사람에게 나타난 피해 증상의 원인은 동물실험이 아니라 정밀의료진단으로 밝혀내는 것이 현대 의학이다.

가해 기업이 공청회에서 자발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만족스러운 보상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도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가해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분명한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법과 제도에 따른 사과와 보상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책임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다. ‘신생아에게도 무해한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가해 기업의 엉터리 주장을 선뜻 인정해준 정부기관의 책임은 절대 가벼운 것일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정부가 살인적인 사용법을 무려 17년 동안이나 묵인해주거나 간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와서 가습기살균제연구센터를 세우겠다는 환경부와 전문가들의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과 달리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전문성과 윤리성이 턱없이 부족한 가해 기업이 개발한 엉터리 제품과 살인적인 사용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17년 동안 그런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보건·환경 전문가들의 전문성도 크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런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중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할 과학적 노력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정부의 지원금은 눈먼 돈이 절대 아니다.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관료들의 어설픈 전문성과 책임감도 연구센터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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