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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폭행 없으면 ‘강간죄’ 아닌 현실…“동의 여부로 법 고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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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 간음죄’ 재점화

여성단체 208개 뭉쳐 기자회견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촉구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7명

“직접적 폭행·협박 없었다” 답해

“현실과 법 괴리 좁혀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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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현행 형법 297조를 ‘동의’ 여부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점화됐다. ‘#미투’ 운동을 통해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드러난 것처럼, 신체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발생하는 성폭력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강간죄의 판단 기준도 바꿔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폭행 또는 협박’이란 요건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된 뒤 66년 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전국 여성인권단체 208곳이 모인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1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행 형법상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현실의 성폭력은 지위나 권세, 영향력 등을 이용해 가해자의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이 수반되지 않는 다양한 유형으로 발생하고 있어 현재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모든 피해자가 법적으로 적절한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강간죄 판단 기준은 피해자로 하여금 폭행이나 협박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저항했는지, 과거의 성 이력은 어떤지 묻는 등 2차 피해를 발생하게 한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특히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폭력 피해 여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됐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팀장은 “피해자들이 상담을 하러 올 때 ‘데이트폭력’이나 ‘가스라이팅’처럼 (새로운 성폭력 개념을) 명확하게 알고 오는 경우가 굉장히 늘었다”며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심리·정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법률적 지원을 요청하는 비율도 좀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미투’ 이후 피해자들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과 가해자 처벌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된 변화가 반영된 것”이란 설명이다. 최 팀장은 “이런 현실에 견줘 법률적 판단은 협소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전체 성폭력상담소 66곳에 접수된 강간(유사강간 포함) 상담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밝힌 1030명 가운데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했다”는 사례가 71.4%(735명)에 이르렀다. ‘폭행과 협박’으로 한정할 수 없는 피해 경험이 오히려 다수란 것이다. 이런 사례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타났는데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저항을 포기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를 속이거나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무력한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였다. 상습적으로 신체적인 위협을 가해온 남자친구에 대한 두려움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피해자가 잠이 들거나 술, 약물에 취한 상태임을 이용할 때, 여행지의 고립된 장소에서 가이드로부터, 입원 중 의료인으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이 그 예다. 이런 경우는 성폭력 판례가 명시해온 것처럼 “반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수반되기 어렵다.

‘연대회의’는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이 ‘여성의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변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행위를 할 것인가 여부, 성행위를 할 때 상대방을 누구로 할 것인가 여부, 성행위의 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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