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GO! 주민자치회 시대](3)“주민이 주인”…미 코펠시, 축제 기획부터 교통 안내·공연까지 주도적 진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자치 실천 미 코펠시 커뮤니티

경향신문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북서쪽에 위치한 코펠시 공터에 마련된 시민축제장 무대에서 지역 문화 관련 커뮤니티 회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번 행사는 지역 커뮤니티협의회 회원들이 주관하고 코펠시청과 경찰국이 지원하는 형태로 열렸다. 이상호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기반 비영리 조직 운영

지역마다 커뮤니티협의회 활성화

공무원·경찰관도 자체 부스 꾸려

수익금, 어려운 이웃에 전액 전달

주민들, 의회·시정 참여 자유로워

예산 집행 등 공개로 ‘투명 행정’

시의회 정기회의선 ‘발언권’ 보장


지난 7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북서쪽에 위치한 코펠시(Coppell City). 코펠시청 인근 성당 앞 공원에서 작은 주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천막 안 무대에서는 지역 문화 관련 커뮤니티 회원들이 마련한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4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였지만 행사장은 자원봉사자와 주민들로 북적였다.

이날 행사는 지역 봉사단체들로 구성된 마을 커뮤니티협의회 회원들이 기획 단계부터 입장, 교통 안내, 부스 운영, 공연 등 모든 행사 일정과 프로그램을 직접 주관했다. 음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 역시 주민들이 직접 꾸려갔다. 시청 공무원이나 경찰관들도 시민과 함께 부스를 운영하며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행사 수익금은 종교 및 봉사 단체를 통해 코펠시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액 전달된다.

자치단체가 주관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한국 대부분의 도시 축제와 달리 이곳 축제는 마을 주민들이 주도하고 시청과 경찰서는 편의시설 제공이나 교통정리 등 행사를 지원하고 보조하는 형태다.

한 주민은 “지역 커뮤니티협의회를 활성화하고, 마을 주민들 간 친목 도모, 시청이나 경찰과의 유대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게 목적”이라며 “행사를 통해 코펠시나 경찰서와 마을의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고 풀어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고 전했다.

■ 주민이 주도, 지방정부는 지원

경향신문

한국도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 전국 마을별로 운영될 주민자치회의 성격과 유사한 미국의 커뮤니티협의회는 자원봉사자를 기반으로 한 비영리 조직이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규칙이나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기능은 유사하다. 협의회는 이웃이나 지역, 특정 시설 등에 대한 애착에서 출발하며 범죄나 학교, 복지, 건강, 이민자 지원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놓고 지방정부 또는 관련 기관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권리를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지역 커뮤니티협의회는 또 다른 광역 협의체를 꾸려 정치활동에 관여하거나, 사회 문제에 대해 연방정부와 토론하는 자리를 수시로 마련하기도 한다.

이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코펠시 인근 르네상스 댈러스 리처드슨 호텔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협의회가 주관하는 만찬회가 열렸다. 이 단체는 댈러스카운티에 있는 약 50개의 아시아계 미국인 상공인과 지역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비당파 정치 성격의 단체다.

이날 만찬장에는 연방 상원의원을 비롯해 인근 도시 시장과 시의원, 지역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이민자 등 500여명이 참석해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서로 교환했다.

주최 측은 “우리의 임무는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가 유권자 교육과 청소년 심포지엄 등을 통해 주류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자격을 갖춘 아시아계 미국인 후보들이 지방과 주 정부에서 임명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초에는 댈러스 한미연합회 댈러스지부가 주최하는 만찬회가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댈러스카운티 담당자가 참석해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민자나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노동 현장에서의 불법매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후원했다.

■ 시장·의회 의원은 봉사직

인구 4만6000여명의 코펠시 시장의 직업은 은행원이다. 7명의 시의원도 회사원, 엔지니어, 변호사 등 모두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에겐 정해진 급여가 없다. 실비만 지급되는 봉사직이다. 시장은 의회 의장을 겸하며, 의원과 협의를 거쳐 전문 행정가인 시티매니저를 임용한다. 시장은 매니저와 행정의 방향을 의논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는다. 시의 행정과 인사권은 시티매니저가 갖는다. 물론 시장과 협의하는 과정을 밟는다. 검사와 경찰국장도 같은 방식으로 임명한다. 검사는 경찰 수사결과를 놓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직접 수사에 나서지는 않는다. 판사 1명은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피선거권의 연령과 연임에도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시장과 시의원, 판사 등 선출직들은 정당 공천을 받지 않는다. 시의원은 투표자의 50% 이상을 득표해야만 당선된다. 후보자가 많아 특정 후보의 득표율이 당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1·2위 후보를 두고 결선투표를 한다. 임기는 3년이다. 한국처럼 시장과 지방의원 모두를 동시에 뽑는 것이 아니라 3명과 4명으로 나눠 각각 선거를 치른다. 시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코펠시의회 정기회의는 매월 둘째 화요일과 넷째 화요일에 열린다. 한국의 지방의회와 동일하게 감사 및 조사권은 있으나 매년 정기적으로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는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시정이나 회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따로 감사 및 조사권을 발동할 수 있다. 시장과 의원 등 선출직에 대한 주민소환제와 주민들이 직접 입법할 수 있는 주민발안 또는 주민입법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커뮤니티협의체나 주민들이 의회나 시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민은 매월 2회 열리는 시의회 정기회의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으며,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보장받는다. e메일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시의원들의 개인 공용전화로 직접 통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펠시청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시의 모든 행사 및 회의 일정이 게시되는데 월별로 날짜·시간대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예산이 어떻게 쓰였고,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도 꼼꼼하게 주민들에게 알린다. 시나 의회의 주요 회의 내용은 지역 방송을 통해 중계하거나, 인터넷 영상 등을 통해 편집없이 그대로 전한다. 공무원 개개인의 e메일 주소와 개인 공용 전화번호도 공개돼 있다.

코펠시 비키 키아베터 부매니저는 “투명한 시정 공개는 당연한 의무이며, 지역 커뮤니티협의회와의 소통은 시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들 없이 시를 꾸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민 와서 주위 도움 많이 받아…이젠 봉사할 수 있어 행복”

존 전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경향신문

미국 댈러스카운티 코펠시에 거주하는 존 전(51·John Jun·사진)은 이민 1.5세이다. 열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변호사다. 지역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펼치며 한국인을 비롯한 미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 증진과 코펠시 발전을 위한 여러 커뮤니티협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씨는 코펠시가 구상하고 있는 ‘2040년 프로젝트’에 주민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아 전하는 지역 커뮤니티협의회 회원이다. 그는 “다양한 인종의 주민들이 그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나 회원 모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설계에 함께하고 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봉사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법률 무료 상담은 물론 소송 관련 무료 변론까지 해 주는 단체에도 소속돼 있다. 그는 “이민을 와서 어렵게 생활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봉사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인만큼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씨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봉사활동은 소수민족 이민자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일이다. 코펠시 지역은 물론 댈러스시에서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투표 독려 및 교육·지원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후손들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투표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 미국이나 한국 모두에서 더 큰 자산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에게 한국에서도 미국의 커뮤니티협의회와 같은 주민자치회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알려준 뒤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게 산다. 그래서 정치(투표)나 지역자치 참여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시간은 쪼개면 만들 수 있다. 만들지 않아서 없는 것”이라며 “소속된 사회에서 불평들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참여다. 한국 주민자치회의 성공 여부도 참여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참여를 강조했다.

◆주민은 민원 질의·경찰은 친절하게 답변…화기애애 ‘소통의 장’

자치경찰과 주민 간담회 가보니

경향신문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브리스코 카펜터 축산센터 대회의실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북텍사스 지역 자치단체 경찰관들과 관련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모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상호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오전 8시(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브리스코 카펜터 축산센터 대회의실에서는 자치경찰관과 시민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댈러스 경찰국이 주최한 이날 간담회에는 북텍사스 소속 경찰관들과 관련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일반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경찰과 시민의 거리감을 좁히고, 효율적인 경찰행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올해 두 번째로 마련됐다. 경찰관과 시민들은 간담회장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오후 3시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르네이 홀 댈러스 경찰국장은 기조연설에서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경찰과 시민들이 좀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향을 찾기 위해 오늘 자리가 마련됐다”며 “이 자리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배운 것을 나누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 팔레스타인시 경찰국장인 앤디 할비는 “(우리 지역에서는) 히스패닉 그룹 주민들의 간담회 참석률이 매우 낮아 그들을 직접 만나보니 그들은 ‘우리는 준비돼 있는데 그동안 경찰이 다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경찰의 적극적인 대화 자세를 주문했다.

2부 프로그램에서는 소규모로 모여 시민들과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시아계 한 주민은 “경찰이 교통 위반 스티커를 발부하면서 영어에 익숙지 않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고 ‘판사에게 말하라’며 돌아서는 사례도 있다”며 “운전자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한번쯤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코포랄 아이라카터 교통순찰담당은 “우리도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 얼마 전에도 교육을 받았다”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담당하는 데릭 홀랜드 순경은 “경찰관 이미지 개선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있느냐”는 주민 물음에 “경찰은 한번 잘못하면 10번을 잘해도 이미지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청소년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거나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댈러스경찰국 졸리 엔젤 로빈슨 홍보실장은 “오늘 간담회에서 나온 건의나 의견은 관련 커뮤니티협의회나 시정부와 논의해 개선하거나 대책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회원들 경찰차량 타고 마을 순찰…하루 4시간 무보수 봉사

자치경찰 지원하는 봉사단체

경향신문

지난 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코펠시에서 코펠경찰국 업무를 지원하는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빌리보너(오른쪽)와 덴프레이가 순찰차를 직접 운전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찰관의 입과 손이 아니고 눈과 귀로만 봉사합니다.”

지난 6일 오전 9시(현지시간) 미국 코펠시 경찰센터 앞에서 자치경찰 업무를 지원하는 커뮤니티협의회 회원 2명이 순찰차량에 올랐다.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다 퇴직한 빌리보너(64)와 변호사를 은퇴한 덴프레이(61). 이들은 총을 소지하진 않았지만 경찰의 교신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무전기가 탑재된 순찰차량을 타고 한 헬스클럽 야외 주차장을 한동안 돌았다. 주차된 차량 사이에 서 있거나 차 안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창문이 깨진 차량은 없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덴프레이는 “차량을 파손하고 물건을 훔쳐가는 범죄가 종종 발생하는 곳이어서 순찰은 돌지만 범인이나 범죄가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해도 직접 나서 체포하지는 않는다”며 “발견 즉시 곧바로 경찰에 연락해 경찰관이 검거 또는 검문토록 하는 것이 맡겨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차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무전기에서 경찰관들의 교신이 시작되면 곧바로 대화를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빌리보너는 “혹시라도 도주나 수배 차량에 대한 내용이 전해질 수도 있어 무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순찰할 때 창문을 반드시 내렸다. 비명이나 구조 요청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코펠시의 이 봉사단체에서는 모두 77명이 활동한다. 하루 봉사시간이 약 4시간이지만 그들에게 지급되는 활동비는 없다. 직업은 물론 연령대도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덴프레이는 “우리가 경찰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면 그들(경찰관)이 우리 도시의 치안을 위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경찰관의 어려움과 입장도 전할 수 있어 시민과 경찰관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역할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코펠 | 글·사진

<시리즈 끝>

코펠·댈러스 |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