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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대법관 출신 유튜버 "3분 영상 보면 법률도 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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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산선생 법률상식' 박일환 변호사

구독 3만8000명, 젊은층에 인기… 판례 공부해 주제 선정·촬영까지

"귀엽다는 댓글 보면 기분 좋죠"

"회식 자리에서 농담으로 '회사 그만두겠다'고 했다가 회사가 실제로 퇴직 발령을 낸다면 효력이 있을까요? 2심에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1심에서는 퇴직 발령이 정당하다고 했던 사건입니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법률상으로 큰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최고 엘리트 유튜버'로 불리는 이가 있다. 뻣뻣한 자세로 미리 준비한 원고를 달달 외우는 듯한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이지만, 그의 이력을 알고 나면 신뢰가 생긴다. 그는 2006~2012년 대법관을 지낸 박일환(68) 법무법인 바른 고문변호사다. 작년 12월부터 유튜브 채널 '차산 선생 법률상식'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만난 박일환 전 대법관이 평소 유튜브 촬영 모습을 재현해 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 "영상을 더 멋지게 꾸미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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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 밀접한 판례나 법률 제도를 쉽게 설명해주는 3분 남짓 영상을 일주일에 1~2개씩 올리고 있다. 축구 동호회에서 상대방과 충돌해 부상을 입었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부모의 빚에 대해 자식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같은 주제를 판례를 통해 설명한다. 구독자는 3만8000명에 육박하고, 인기 영상은 조회수가 3만회를 넘는다. 젊은 법조인, 로스쿨생들에게 특히 인기다.

유튜버가 된 계기는 딸의 권유였다. "법률 분야를 아버지만큼 확실히 알고 쉽게 설명해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은 그때부터 집에서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그 앞에 앉아 법률 상식을 알려주는 '차산 선생'이 됐다. 차산(此山)은 그의 조부가 붙여준 호다.

딸이 편집을 돕지만 모든 촬영을 박 전 대법관 혼자서 한다. 그는 "처음엔 해상도 설정하는 법도 모르고, 주변 소음 차단은 생각도 못해서 3분짜리 영상 하나도 몇 번씩 다시 찍었다"며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고 했다.

영상 제작 과정에서 박 전 대법관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주제 선정이다. 35년 법관 생활을 회상하고 각종 법학 참고서를 뒤져 최신 판례를 공부하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주제를 찾는다. 그는 "원고 쓰고 촬영하는 건 1시간이면 되지만, 주제를 고르는 데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상은 35세 미만 시청자의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잘 배우고 갑니다" "대법관님 귀여워요"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 덕분에 '댓글 청정구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판사들도 사석에서는 다들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인데 귀엽다는 말 들으면 기분 좋다"고 했다.

앞으로 젊은 법조인과 소통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혼자 앉아서 딱딱하게 원고를 읽는 것보다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답을 하면서 다양한 세대 법조인의 생각을 공유해보고 싶다"고 했다. 법조인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만 보고 법조인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길 바랍니다."

대법관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그는 유튜브를 통해 국민의 법 감정과 실제 법 규범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오랫동안 유튜버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가 다 떨어지면 걱정이지만, 판례는 계속 나오고 제 경험들도 있으니 오래 유튜브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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