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펼쳐온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 “국립공원은 유원지도 돈벌이 대상도 아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박그림 대표가 가벼워진 마음으로 광화문에 섰다. 그는 “국립공원만이라도 철저히 보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설악산 보호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 상징 ‘녹색 치마’ 입고

대청봉 정상 등서 11년 시위

환경부의 부동의 결정에

치마 벗고 당분간 휴식하기로

국립공원은 후손에게 줄 유산

이젠 ‘시설물 철거운동’ 할 것

편한 자연 감상법도 바뀌어야


“한국은 설악산을 비롯한 국립공원을 유원지 대하듯 하고 있습니다.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국립공원은 다음 세대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게 돌려주어야 하는 신성한 곳이에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71)는 “11년 만에 녹색 치마를 벗었다”고 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외치며 거리농성을 할 때, 주말마다 대청봉 정상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늘 그는 녹색 치마를 입었다. 지난 16일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제2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그의 투쟁도 당분간 휴식을 갖게 됐다. 그는 “녹색이라는 것이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치마라는 옷 자체가 품어준다는 느낌도 있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복장”이라며 웃었다.

박 대표는 이번 환경부 부동의 결정의 의미에 대해 “설악산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며 “설악산에 기존 케이블카 외에 새로운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설악산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 난립 저지의 빗장을 열어 주는 신호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 강원도가 정부에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설악산 제2 케이블카는 지난 38년간 총 6차례에 걸쳐 지자체의 설치 요구와 정부의 불가 결정이 반복됐다.

박 대표는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오체투지 순례, 설악산에서 청와대까지 200㎞ 도보순례, 정부청사 및 강원도청에서의 천막농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설악산 제2 케이블카 설치를 막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왔다. 그는 “전 국토의 6%에 불과한 국립공원마저 그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후손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자연을 해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의 쉬운 접근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장애인의 일상적 이동권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죠. 멸종위기인 산양을 지키기 위해 억지 번식을 시키는 것보다는 서식지 보존부터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듯이오.”

사람들은 박 대표를 ‘설악산 지킴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표현이 부담스럽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는 “저 혼자 설악산을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저는 그저 설악산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힘을 보태고 산양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게 사람들의 간섭을 줄이고자 행동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악산은 어머니, 산양은 형제”라고 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일찍이 설악산에 매료됐다. 고등학생 때인 1966년 혼자 설악산을 찾았다가 자연의 경이로움에 반했고, 1972년에는 설악산에 대한 그리움을 이름에 담아 ‘박그림’으로 개명까지 했다. 1992년 개인사업을 모두 접고 부인, 자녀들과 함께 설악산 밑에 아예 둥지를 틀었다. 설악산에서 산양을 본 뒤로는 설악산의 자연, 산양의 서식지를 지키는 데 역량을 쏟기로 했다.

박 대표는 “자연을 감상하는 모두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고 인간 중심으로 자연을 박제화하고 있다”면서 “편리와 효율이 중심이 아니라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 자연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다음 행보는 ‘국립공원 내 인공시설물 철거운동’이다. 그는 “안전을 이유로 도보 산행을 위한 데크가 너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는 자연의 원시성이나 청정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설악산 제2 케이블카 설치 부동의 결정으로 “설악산 어머니께 도리를 다했다”는 그는 “주말에 대청봉에 올라가서 설악산에 결과를 신고하고 산양도 보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