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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르포] "상자값 1천800원인데 사과 10㎏ 경매가 3천원,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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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석·풍년에 공급 과잉…사과값 폭락에 장수 농민들 '시름'

(장수=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상자값이 1천800원인데 10㎏짜리 한 상자가 공판장에서 3천원대에 거래돼요. 소비자들은 열배인 3만원 안팎의 비싼 가격에 사드시고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사과 주산지인 전북 장수지역 사과가 올해 풍년이지만,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장수군청 앞에 쌓인 사과 상자
촬영 : 김동철 기자



20일 오후 장수군청 앞 광장에는 사과 수천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이곳 농민들은 "유통구조가 왜곡되고 군청이 수급관리에 실패해 가격이 폭락했다"며 "이를 항의하기 위해 쌓아놓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농민 정동석(78)씨는 "특품 사과 10㎏짜리 한 상자가 최근 경매에서 500원까지 거래된 적이 있었다"며 "1천500∼1천800원인 박스값도 안 나오는 헛농사"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최저 생산비를 맞추려면 상자당(10㎏) 최소 2만원은 받아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사과 한 상자를 3만∼4만원에 사고 있는데, 이는 유통구조가 다단계식으로 복잡하게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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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수확하는 외국인 노동자
촬영 : 김동철 기자



사과 상자를 쌓던 한 농민은 "150박스를 트럭에 실어 경매시장으로 보내는데 운임이 30만원 정도 든다"며 "오늘 아침에는 10㎏ 한 상자가 2천원에 거래됐다는 말을 들었다. 운임을 주고 나면 결국 0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농민은 군청 앞에 사과 상자를 적재한 데 대해 "사과 농가가 늘어나는데 대책 없이 지원한 군(郡)에 대한 책임과 군수 공약이었던 사과 판로 개척을 따지고 싶었다"며 "농가마다 투자비가 다르기 때문에 일정 가격을 받지 못하면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농민들은 정부와 지자체들이 연간 생산량을 관리하면서 적절한 가격수준을 보장하는 등 체계적으로 수급관리를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가격이 폭락한 데에는 올해 추석이 평년보다 이른 데다 태풍 등 기후 악조건 때문에 판매 저조와 가격하락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가을장마와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사과 착색이 지연되는 등 추석 전 출하가 어려워진 점도 가격 폭락에 한몫했다.

특히 이달 6∼8일 열릴 예정이었던 이 지역의 '한우랑 사과랑' 축제가 태풍 '링링'의 여파로 전격 취소되면서 해마다 소진됐던 상당 물량이 그대로 남게 된 이유도 크다.

그럼에도 장수 읍내 한 사과 농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빨간 홍로(사과 품종)를 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팔지 못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다고 해서 농민들은 사과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수확하지 않으면 나무에 꽃이 피어 내년은 물론 향후 몇 년간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장주 송모 씨는 "생산한 사과를 공판장으로 넘기는데 하차비, 경매비 5∼7% 등을 떼면 농민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전국 각 지자체가 지원금을 대면서 사과 농가가 늘었고 공급이 폭증한 것도 가격이 내려간 이유"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농민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안정적인 판로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수군의 올해 예상 사과 생산량은 2만9천700여t으로 지난해 2만2천t보다 35%(7천700여t)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8∼9월에 출하되는 홍로의 생산량은 지난해 1만1천425t보다 35%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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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수확하는 외국인 노동자
촬영 : 김동철 기자



사과값 널뛰기에 농민들은 "언제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하고 우리는 제값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쓴맛을 다셨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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