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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여자답게 남자답게?…지금은 2019년입니다, 정신 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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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키우는 키즈 콘텐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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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dancetoo 지난 8월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ABC방송 스튜디오 앞에서 댄서 300여명이 참여한 ‘발레수업’이 열렸다. 이들은 이 방송국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의 앵커 라라 스펜서의 남성 댄서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비판하기 위해 모였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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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ABC 방송 앵커 라라 스펜서

발레하는 영국 왕자 두고 ‘비아냥’

남자 댄서들 300여명 뉴욕 모여

‘소년들도 춤춘다’ 비판 퍼포먼스

영국에선 성 편견 담긴 광고 금지


‘남자 캐릭터=파랑’ ‘여자=분홍’

유튜브에도 EBS에도 여전히 넘쳐

제품 팔려는 완구업체들도 한몫

“자본 영향으로 성 고정관념 강화”


“한번 생긴 고정관념 잘 안 바뀌어

적어도 교육 이름을 건 콘텐츠라면

성인지 부분 섬세하게 다루고

‘온책읽기’ 통해 판단력 길러줘야”


최근 미국 ABC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의 앵커 라라 스펜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22일 올해 여섯살인 영국의 조지 왕자가 가을학기에 배우게 될 과목을 소개하며 “왕자가 발레수업에서 매우 행복해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갈지 지켜보자”고 비아냥 섞인 논평을 한 것이다.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300여명의 남성 댄서들이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춤을 추는 남성의 사진과 함께 ‘소년들도 춤춘다’(#boysdancetoo)라는 해시태그(검색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발레나 춤을 여성적인 활동이라고 여기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었다. 브로드웨이의 스타 뮤지컬 연출가 제리 미첼은 “진심인가요? 우리는 발레를 합니다. 지금은 2019년입니다. 정신 차려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올려 스펜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스펜서는 결국 사과했다.

영국 광고심의위원회는 지난 6월부터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광고를 내놓지 못하도록 했다. 영국 BBC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미래를 각각 과학자와 발레리나로 묘사하는 광고가 아이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이러한 결정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무방비 상태로 접할 수 있는 광고에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담겨선 안된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선진국에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이 접하는 콘텐츠에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이를 제지하는 규정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 ‘고정관념’ 가득한 키즈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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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소녀를 두꺼비가 납치하려 하고 있다. 동화 <엄지공주>를 영상으로 만든 유튜브 콘텐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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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유덕(5) 쌍둥이 형제의 엄마 조현경씨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은혜갚은 호랑이’나 ‘엄지공주’ 같은 영상을 보여줬다가 당황했다. ‘은혜갚은 호랑이’에는 나무꾼에게 도움을 받은 호랑이가 여성을 ‘색시’로 데려다놓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엄지공주’는 튤립꽃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두꺼비의 ‘신붓감’으로 납치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콘텐츠에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내용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자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는 공격적인 ‘용사’ 캐릭터가 등장하고, 여자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는 서구적인 외모의 ‘공주’ 캐릭터들이 나온다.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동물이나 ‘자동차’ 캐릭터가 등장해도 남성적인 역할을 맡는 캐릭터는 파란색으로, 여성적 캐릭터는 분홍색으로 표현된다.

최근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는 완구업체가 주도적으로 만들거나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관련 제품에 대한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이뤄진다. 여자아이들이 즐겨 보는 <시크릿 쥬쥬>에는 공주가 되고 싶은 팔등신 소녀들이 단체로 등장하는데, 캐릭터가 새겨진 의류는 물론이고 화장용품이나 악기, 재봉틀 같은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기업들은 아이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소비자나 신규시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잘 팔릴 만한 제품을 마케팅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광고를 하며, 아이들이 ‘저건 꼭 사야 해’라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덕 공동대표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더욱 강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교육’을 기치로 내건 콘텐츠도 예외가 아니다. 다수의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교육방송인 EBS를 통해 오전 시간대 방송되는데, 해당 프로그램이 끝나면 관련 제품 광고가 이어진다. 장하나 활동가는 “EBS 같은 교육방송에서도 장난감 등을 생산하는 업체가 투자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방송된다”며 “밤에는 ‘스웨덴의 선진 교육’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면서 아침에는 다시 고정관념이 가득 담긴 방송과 광고를 내보내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빠르게 확산되는 통로로 지적된다. 지난 5월 유튜브의 구독자수 기준 상위 11개 아동용 콘텐츠 채널을 분석한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아이들이 즐겨 보는 콘텐츠 대부분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아기 인형을 돌보거나 청소와 빨래, 요리를 하는 일은 여자아이의 몫으로 묘사되고 화장을 하거나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이 ‘미덕’인 것처럼 소개된다. 남자 등장인물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사내녀석이…”라는 자막이 등장하고, 운동능력이 떨어지거나 힘이 약한 남성은 웃음거리로 삼는다.

권 활동가는 “유튜브에는 성역할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을 담은 콘텐츠가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튜브가 키즈 콘텐츠에 대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부모나 교사 등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 아이들이 제대로 보고 배울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지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교육 콘텐츠는 고정관념 유념해야”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콘텐츠를 완벽하게 차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유튜브나 TV 애니메이션을 집에서는 금지한다고 해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직간접적으로 이런 콘텐츠를 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콘텐츠들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에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학대가 될 수도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완화시키기 위해선 엄선된 교재와 콘텐츠를 활용해 아이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초등학교 교과과정 중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는 ‘온책읽기’처럼 다양성의 가치가 담긴 책을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읽도록 함으로써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와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민단체 씽투창작소의 남윤정 대표는 “유튜브처럼 성역할 고정관념이 노골적으로 담긴 콘텐츠를 아이들이 완전히 보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것들은 더욱 엄선해 아이들이 접하게 해야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고정관념이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인지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들이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이들이 접하는 교재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부모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다. 장 활동가는 “어린이집에서 보는 책이나 교재 등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부모들이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이 접하는 모든 콘텐츠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담겨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야 하고 교사들이 더욱 유념해야 의도치 않게 고정관념을 교육하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생겨난 고정관념이 사회 안에서 공유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마련되어야 한다.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교육을 통해 완화되긴 하지만, 한번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알게 모르게 여러 세대에 걸쳐 고정관념을 배우게 되는데, 잘못된 고정관념이 발현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제도나 분위기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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