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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가미카제식 사우디 공격, 드론 전쟁 시대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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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세력·빈국, 비대칭무기 활용 시대

자체개발 능력 이란, 드론 강국 평가

에너지대국 사우디 석유생산 반 토막

1만 달러 드론, 수십억 달러 피해 줘

수백㎞ 은밀 비행 공격 ‘침묵의 무기’

크기·소음 작아 탐지·제거에 어려움

미, 테러전쟁서 대형 드론 적극 활용

이스라엘, 요인암살 표적확인에 동원

정찰 넘어 미사일과 자폭 공격용 진화

드론 전쟁 대비 기술개발 안보과제로

지난 14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 두 곳이 드론 공격을 받아 마비되면서 세계는 드론의 위협에 새롭게 눈뜨게 됐다. 사우디 동부의 아브카이크 탈황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10대로 알려진 드론떼의 자폭 공격으로 손상되면서 이 나라의 석유 생산 규모는 반토막이 났다. 시장 가격 1만 달러(약 1200만원) 남짓한 드론 10대로 중동 최대 산유국의 석유 생산에 괴멸적인 타격을 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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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이 지배하는 예멘 수도 사나에서 지난 10일 열린 집회에 참가자들이 드론 모형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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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출발점 모호…예멘은 멀고 이란은 가깝다



문제는 공격에 사용된 드론이 어디에서 출발했느냐다.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주장한 후티 반군의 근거지인 예멘은 공격지점에서 1200㎞ 이상 떨어졌다. 가장 항속거리가 긴 민수 드론이 약 700㎞를 날아갈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드론이 예멘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보조 연료탱크를 달고 항속 거리를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적재할 수 있는 폭탄의 양이 줄어 공격 효과가 떨어진다.

게다가 내전에 휩싸이고 항구도 봉쇄당한 예멘에서 드론을 제조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드론 공격을 당한 사우디 석유 심장부가 이 나라와 숙적인 이란과는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불과 200㎞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거리로는 충분히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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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피습당한 석유 시설에서 수거한 드론과 순항 미사일 잔해를 공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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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드론 강국…자체 개발·생산 능력 갖춰



게다가 이란은 중동의 군사 대국이자 드론 강국이다. 이란은 드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다량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노획한 미국산 드론을 역설계해 복제하는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일찍이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중 무인기의 전술적 가치에 눈뜨면서 많은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 무인기의 능력은 눈부시게 발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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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테헤란에서 열린 군수산업전에서 공개한 '샤헤드(목격자) 129' 다목적 드론의 모습. 가공할 수준의 정찰과 폭격 능력을 갖춘 첨단 드론이다. 이란은 자체 개발과 생산 능력을 갖춘 세계적인 드론 강국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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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2012년 개발한 드론인 ‘샤헤드(목격자) 129’는 대당 가격이 75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고가 기종이다. 정보수집·수색·정찰은 물론 전투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항속거리다. 400㎏ 무게의 정밀유도폭탄 4발을 싣고 3400㎞를 비행할 수 있어 전투행동반경이 1700㎞나 된다. 이란은 가공할 장거리 드론 폭격 능력을 확보한 셈이다.

2016년에는 다용도 드론인 사에게흐(벼락)를 선보였는데, 성능이 미국의 최신 드론에 버금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은 다양한 정찰용 전술 드론과 표적용 드론도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란이 사우디와 미국에 전면전의 명분을 줄 수 있는 공격 행위를 벌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란의 석유 시설도 미국이나 사우디의 미사일이나 전투기의 공격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석유 시설이 공격받으면 가뜩이나 미국 제재로 수출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란은 재앙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라 경제가 마비될 경우 이란의 신정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스라엘, 암살 작전으로 드론 전쟁 개막



이스라엘은 특수부대나 정보기관에서 드론을 암살 작전에 활용하고 있다. 일찌기 2004년 4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지도자 아메드 야신(1937~2004년) 살해 때 드론을 이용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보원과 통신 도감청 등으로 목표물의 위치를 파악한 뒤 드론을 날려 목표물이 그 시간에 해당 위치에 있는지 최종 확인했다. 크기가 작아 육안으로 보기 힘들고 엔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드론이 요인 암살 작전에서 ‘침묵의 첩보원’ 노릇을 한 셈이다. 아파치 헬기의 공대지 헬파이어 미사일로 암살 작전을 완료했는데, 드론이 없었다면 이처럼 치밀한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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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라비아 국방부 대변인이 드론에 피습된 자국 석유 시설과 주변국과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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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용에서 공격자로 위상 변경



드론은 적을 살피는 눈에서 적을 직접 공격하는 비수로 진화했다. 드론에 공격 기능이 있으면 정보 파악과 동시에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실시간 작전이다.

이스라엘은 2007년 5월부터 드론을 동원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로켓 발사대를 수색하고 있다. 수색과 공격용을 겸한 이 드론들은 목표를 발견하는 즉시 파괴하는 작전을 벌여왔다. 드론이 공격 기능을 갖게 되면서 작전의 양상이 진화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20시간 체공이 가능한 헤르메스-450 무인기에 미사일을 장착해 작전에 투입하는데, 이 기종은 이스라엘의 수출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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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미국 정부와 디지털글로브사가 공개한 사우디 석유시설의 위성사진. 붉은 부분이 드론 공격으로 피습당한 곳이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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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범지구적으로 드론 전쟁 수행



군사용 드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실전에 활용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터에서는 물론 예멘을 비롯해 알카에다가 활동하는 지역에서도 드론을 적극적으로 투입한다. 정찰은 물론 지상 공격에도 활용도가 높다.

미군도 드론을 다양하게 작전에 투입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조직은 중앙정보국(CIA)으로 알려졌다.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 9월 드론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해 표적 암살 작전을 펼칠 권한을 얻은 이후 드론 공격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북변경주 등 탈레반 준동 지역과 예멘 등 알카에다 활동 지역에서 드론을 활용한 표적 암살 작전을 진행해왔다. 2011년 빈 라덴 암살 작전에서도 빈 라덴 거주지를 최종 확인하는데 드론을 동원했다.



본격 드론 전쟁의 시대 열려…기술 확보해야



CIA 무인기는 파키스탄 남부 발루치스탄주의 황무지에 있는 비밀 비행장에서 이륙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는 민간인 오폭으로 피해가 난다고 미국에 항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보기관끼리 밀약을 맺어 이런 공격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 조종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작전통제실에서 이뤄진다. 위성 통신을 이용해 드론과 수천㎞ 떨어진 안전한 통제실에서 전자오락 하듯이 드론을 조종한다. 조이스틱을 이용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살 작전을 벌인 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 불빛 사이로 퇴근하는 CIA 드론 조종사는 21세기 첨단기술 시대의 아이로니컬한 모습이다.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으로 글로벌 드론 전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드론 기술을 확보하는 나라만이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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