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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원희복의 인물탐구]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홍형숙 “북과 영화교류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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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DMZ영화제 집행위원장 홍형숙/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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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국제다큐영화제가 9월 20일 경기 파주·고양에서 열렸다. 세계 유일 비무장지대 바로 앞에서다. ‘분단의 비극을 넘어 화해와 공존의 희망을 찾자’는 주제로 열린 이 영화제는 올해 11번째다. 이 영화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다큐영화제로 자리잡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 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최종 목표는 세계 굴지의 다큐영화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경기도가 주최하는 이 영화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조직위원장, 이재준 고양시장과 최종환 파주시장이 부조직위원장이다. 실제 영화제를 기획·집행하는 영화인은 홍형숙 집행위원장(57)이다. 그 역시 다큐 감독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강의하고 있다. 9월 9일 홍 집행위원장을 고양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에는 8월 갑자기 집행위원장을 맡아 경황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의지를 갖고 나름 준비했을 것이다. 어디에 중점을 뒀나.

“DMZ국제다큐영화제 시즌2를 맞아 조직위와 함께 TF를 만들어 비전과 혁신이라는 가닥을 잡았다. 첫 번째는 국제영화제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두 번째는 한국과 아시아 다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세 번째는 대중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영화제, 네 번째는 경기도 기반의 영화제로 지역기반 프로그램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올해 11번째로 경기도가 주최

-좋은 것은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된 내용이 있지 않나.

“우리 영화제는 페스티벌 부문이 있고, 인더스트리(산업) 부문이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인더스트리 부문은 다큐영화 발굴·지원 단계를 세분화,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획·개발단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10개 작품을 뽑아 500만원씩을 지원한다. 다음 제작단계에서 투자·협업할 수 있는 국내 방송사나 다큐 배급사뿐 아니라 해외 BBC, 넷플릭스 피디 등 다양한 다큐 플랫폼 관계자와 일대 일 만남을 주선해 지원이 이뤄지도록 한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가 다시 페스티벌로 상영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 46개국 15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 정도 규모이면 국내 다큐영화제로선 최대다. 세계적으로는 어떤가.

“출품작은 훨씬 많았다. 규모와 내용면에서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에서 큰 영화제다. 다만 아시아권 네트워크가 정착되지 못해 인지도를 크게 올리지 못한 것 같다.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나 칸영화제 다큐 부문 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금 아시아권에 뿌리를 내리려는 단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조직위원장인 부산시장의 과도한 개입으로 영화인과 불화를 겪으며 파행이 일기도 했다. 경기도는 그런 것이 없나.

“이재명 조직위원장은 국제영화제로 위상을 강화하라고 예산까지 증액해줬다. 우리 DMZ다큐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와 다른 것은 영화제 기간만 아닌, 상시 도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영화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조직위원장은 ‘지원하되 간섭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킨다.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번 DMZ다큐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는 10개 작품이 선보인다. 2018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은 아프가니스탄 아부자르 아미니의 <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가 아시아에서 처음 상영된다. 아시아 경쟁 부문에서는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내부 시선으로 다룬 <잊혀진 혁명의 노래> 등 10편이 소개된다. 관심을 끄는 한국 경쟁 부문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경순 감독의 <애국자게임2-지록위마>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를 고발한다. 대학강사 문제를 11년간 제기한 노부부의 삶을 기록한 <늙은 투쟁, 가 이야기>도 볼 만하다. 59분 미만 단편 경쟁 부문에는 아시아 11개 작품, 한국 9개 작품이 상영된다.

DMZ는 아무래도 경기도가 가진 상징적인 ‘자산’이다. 강원도에도 DMZ가 있지만 분단·휴전의 상징인 판문점, 화해·협력의 상징인 도라산역과 개성공단이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만 못하다. 그래서 ‘북한’이라는 주제는 DMZ다큐영화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분야다. 비슷한 시기 북한에서도 ‘평양영화축전’을 연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 북측 영화를 초청하지는 못했다. 홍 집행위원장은 “북측에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영화 교류를 제안하고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없다”면서 “제3의 시선으로 북을 보는 다큐를 모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은 영화는 ‘DMZ비전-인터-코리아’로 묶여 상영된다. 프랑스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의 <평양유랑>, 석해인의 <숨을 내쉬며> 등 10편이 선보인다.

국제경쟁 부문에 10개 작품 선보

홍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에서 놓치면 후회할 국제 1편, 국내 1편의 영화를 추천했다. 국제작은 올해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작품상을 받은 시리아 영화 <사마에게>다. 국내작은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소연 감독의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다. 내용은 청년들이 목포역에서 서울역을 거쳐 베를린역까지 여행하면서 춤추며 평화를 노래하는 작품이다. 홍 집행위원장은 “영화에 출연했던 청년들이 영화제 개막식 때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1962년 서울 출신이다. 1982년 이화여대 시청각교육과에 입학, 중앙대 대학원에서 영화영상제작을 전공했다. 그는 1987년 ‘서울영상집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다. ‘서울영상집단’은 서울대 영화서클 ‘얄라셩’ 출신이 만든 진보적 다큐영화공동체다. 1990년 심각한 주택문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할 때 제작한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가 그의 첫 작품이다. 그는 “상영한 곳이 없어 보신 분이 드문 영화”라며 “좌절했던 데뷔작”이라며 웃었다. 경기 가평 두밀리 폐교문제를 다룬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출품한 것이 그의 첫 영화제 경험이다.

홍 위원장은 그동안 다큐영화를 15편 만들었지만 대표작은 2002년 <경계도시1>과 2009년 <경계도시2>이다. 일본 태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다 독일로 유학, 이후 북한을 왕래하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다룬 영화다. <경계도시1>은 스스로 남북의 ‘경계인’임을 자처한 송두율 교수 개인 얘기고, <경계도시2>는 송 교수가 37년 만에 귀국하는 문제를 놓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소용돌이를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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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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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철학자의 사상·양심의 자유가 국가보안법과 집요한 언론의 종북몰이에 철저히 유린당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하지만 결국 송 교수는 2007년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승리(무죄)한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다큐멘터리 본연의 현장성과 세련된 연출을 성취했고, 분단국가 모순과 우리 사회 내부 이데올로기 대립을 날카롭게 조망했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DMZ다큐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홍 위원장은 “이번에 경순 감독의 <애국자게임2-지록위마>와 탈북했으나 다시 북으로 가려는 김련희씨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그림자꽃>이 국가보안법 아래 남북과 관련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큐영화의 ‘대부’로 통하는 푸른영상 김동원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김 감독은 ‘다큐영화는 원래 재미있는데 감독이 재미없게 만들어서 관객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김 감독이 만든 다큐영화 <내 친구 정일우>를 같이 봤는데 정말 재미없더라.(같이 웃음) 정일우 신부가 태어나 한국에 와서 철거민을 위해 활동하다 조용히 죽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한 구성이었다. 비슷한 시점 MBC PD 출신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이 만든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영화 <자백>은 성공했다. 다큐·독립영화 제작자도 관객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려운 질문이다. 최승호 PD가 만든 다큐영화 <공범자들>을 배급한 사람이 우리 집행위 부위원장이다. 다큐영화라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이미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노무현입니다> 등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다큐 제작 관점은 ‘나를 경유한 진실’

-흥행에 성공한 <변호인>이나 <택시운전사>, 심지어 진부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 얘기를 다룬 <명량>도 픽션을 가미했지만 다큐가 기반이다.

“그렇다. 그 영화들 모두 다큐에서 출발한 것이다. 감독마다 본인의 예술세계나 그것을 표현하는 화법이 다르다.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을 잘 표현하면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감독들은 여전히 자신의 철학이나 프레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큐영화 감독이나 기자나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찾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직업이다. 기자들은 증언을 교차검증하는 훈련을 받는다. 왜냐하면 증언은 불완전한 기억과 함께 자기 위주로 말하기 때문에 진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다큐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인터뷰나 증언은 그런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말이다. 나는 다큐영화도 팩트체크·크로스체크를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팩트체크로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큐 감독들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경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나도 그 점을 학교 강의에서 매우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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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쟁 부문에 출품된 경순 감독의 <애국자게임2-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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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도 힘겹고, 특히 ‘돈’도 안 되는 다큐영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 다큐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다큐영화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어려운 질문이다”라면서 ‘휴~’하고 한숨부터 쉰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동시대 친구들과 수다, 혹 의미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다큐 제작 관점을 ‘나를 경유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내가 본 세상’ 혹은 ‘내가 본 주제의 결과물’이 바로 자신의 다큐라는 것이다.

그는 한예종 영상원 객원교수로 ‘다큐 입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전임이 아닌 객원, 계약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AMPAS) 회원이 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DMZ다큐영화제는 새롭게 비상하는 영화제, 10년을 내다보는 영화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면서 “깊어가는 가을 축제의 장에 꼭 찾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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