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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잠든 환자 무단 장기적출…괴담일까, 실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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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해철씨가 2014년 10월 27일 사망한 이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자 반드시 개복을 할 필요 없는 위밴드 제거수술로 사망한 점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유가족은 고인의 부검을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 결과 밝혀낸 그의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뱃속에 있는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의 장기에는 곳곳에 천공, 즉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심낭에 0.3㎝의 천공이 발견된 것을 비롯해 횡경막, 소장에서도 천공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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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5일 고 신해철 유족 측이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비공개 가족장을 치른 뒤 고인의 수술을 집도한 A병원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이선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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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착박리술 하면서 동시에 담낭절제

신해철씨가 2014년 10월 17일 복통을 호소하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병원이 판단한 통증의 원인은 ‘마비성 장폐색’이었다. 쉽게 말해 장이 완전히 폐색된 것은 아니고 비침습적 치료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상태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위밴드 수술을 한 A병원을 찾아 시술을 요구했다. A병원 강모 원장은 신해철씨가 내원한 지 3시간 만에 복강경(복부를 완전히 가르지 않고 일부에 구멍을 내 하는 수술)을 통한 유착박리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초 신씨와 그의 가족이 사전에 동의한 적이 없는 위봉합술이 이뤄졌다. 위의 넓은 부위를 안쪽으로 집어넣어 주름을 만든 후 봉합하는 형태의 수술이다. 의학계에 증명되지 않은 형태의 비만수술에 해당했다. 애초에 환자나 그의 가족이 요구하지 않은 수술을 자의적으로 한 셈이었다. 법원 역시 해당 수술로 인해 천공이 발생,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 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했다. 강 원장은 1심에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문제는 또 있었다. 환자와 유가족이 동의한 적 없는 수술이 해당 병원에서 2012년에도 이뤄졌었다는 점이다. 신해철씨는 2012년 2월 한 차례 유착박리술을 하면서 담낭절제술도 동시에 받았다. 담낭은 통상 우리가 ‘쓸개’라고 부르는 부위로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저장해뒀다가 쓸개즙이 필요할 때 배출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다. 의료계에서는 담낭을 절제해도 환자의 95%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담낭관이 담낭을 대신해 쓸개즙을 저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씨의 유가족은 고인의 사망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A병원에서 2012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담낭을 절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병원에 재직한 간호사 역시 A병원에서 담낭절제 및 충수돌기제거술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강 원장은 그러나 “신씨가 담낭염이 있어 제거한다는 내용의 수술마취 동의서를 작성했다”며 고인의 개인 질병정보가 담긴 각종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 강 원장은 이후 신해철씨의 개인정보를 무단공개한 혐의(업무상비밀누설)에 대해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물론 강 원장의 주장대로 신해철씨가 받은 담낭절제술은 환자나 그 유가족이 기억하지 못할 뿐 사전 동의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다. 신씨의 유가족과 강 원장 사이의 각종 민·형사 판결문 내에 담낭절제술에 관한 판단은 나온 바 없다.

“의사들이 장기매매를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담낭절제술이 의료수가 분쟁과 맞물려 의사들 사이에서 일종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담낭절제술과 충수돌기(맹장 끝에 달린 기관)제거술을 한 뒤 건강보험공단에 급여청구를 하면 1건당 약 89만원의 비용을 받아낼 수 있어 굳이 제거할 필요 없는 환자에게까지 수술을 남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간경향>은 실제 담낭절제술이 증가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005년부터 2018년까지 특정 행위코드(담낭절제술·A7380)의 수술건수 현황을 받아봤다. 그 결과 2005년까지 3만1140건에 불과하던 담낭절제술이 매년 증가해 2018년 한 해 동안 7만6914건의 담낭절제술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13년 사이 담낭을 절제한 환자가 2.46배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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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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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낭암은 발견된 이후에 담낭을 절제해도 암 재발률이 높고 치사율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담낭에 염증이 발견됐을 경우 제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많은 숫자라는 것이 일부 의사들의 주장이다.

왜 매년 담낭절제술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명확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건강심사평가원 및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특정 병명 청구건수가 증가한 원인 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부서가 없어 원인에 대한 답을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대한외과의사회 관계자 역시 “의사회 자체적으로 특정 병명코드 청구에 대한 취합을 하지 않고 있고, 급여청구는 각 개별 병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단체에서 매년 얼마만큼 청구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증가 원인 역시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장기매매를 하는 수준이다.” 한 외과 전문의의 말이다.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될 장기들을 떼어내고 급여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장기매매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다. 이 전문의는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를 하는 과정에서 충수돌기제거술이 돈벌이로 이용되고 있다고도 했다. 제왕절개 수술 후 통증이나 충수돌기제거술 후 발생하는 통증에 큰 차이가 없고, 일단 떼어낸 뒤 환자에게 통보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부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충수돌기를 떼어낸 후 환자에게 ‘염증이 보여서 떼어냈다’고 하면 그걸 안 믿을 환자가 어디 있나. 수술도구 중에 장기를 지지는 기구가 있다. 그걸 충수돌기 쪽에 살짝만 갖다대도 마치 실제 염증이 있는 것과 같은 외관상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충수돌기를 떼어내고 급여청구를 한다.”

반면 30년 경력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서 충수돌기를 동시에 제거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제왕절개는 비염증 수술이고, 충수돌기제거술은 염증에 따른 수술인데 두 수술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가 급여청구를 위해 장기를 무단으로 떼어낸다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는 ‘괴담’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일부 의사들이 주장하고 있을 뿐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확인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한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사망한 사건 이후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유령수술의 실체가 드러났듯 이 같은 행위도 언젠가는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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