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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하버드대서 새 역사연구법 고안… 우수졸업생 된 한국인 장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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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익씨가 5월30일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졸업장 중앙에 우수 졸업생을 뜻하는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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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 열린 졸업식 풍경. 맨 윗줄 중간에 손원익씨가 보인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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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부에 재학 중이던 손원익(22) 학생에게 유럽의 한 대학 교수가 항의 메일을 보냈다. 손씨의 논문에 자신의 연구와 겹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표절 의혹에 대한 항의라지만 협박에 가까웠다. 하버드대는 즉각 검증절차를 거친 후 “유럽 교수의 항의는 하버드의 검증 시스템과 학술적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반박했다. 손씨의 논문은 하버드 검증절차를 거쳐 전공 학술학회에서 발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의 교수는 보름 만에 자신의 억측을 인정하는 사과 메일을 보냈다.

유럽 교수를 머쓱하게 한 논문의 주인공 손씨는 어릴 적 장애를 극복하고 지난 5월말 미국 하버드대 우수 졸업생에게만 주어지는 ‘마그나 쿰 라우데’ 상을 받아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 중 최우수 인재에게 주어지는 ‘파이 베타 카파(PBK)’ 상도 수상한 그는 이달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전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손씨의 성취는 어릴 적 장애를 극복한 것이어서 뜻 깊다. 대구 출신의 부친 손창호씨는 뉴욕대에서 사진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했으나 2살도 되지 않던 원익씨에게서 장애를 발견했다. 치료를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간 손씨는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돌봤다. 어릴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한 원익씨는 건강 문제로 공부에 열중하기 힘들었지만 놀라운 독서량을 보였다. 속독과 다독을 통해 매달 수백 권의 책을 독파했다.

손씨는 2011년 뉴욕 맨해튼 트리니티 고교에 입할 때도 일화를 남겼다. 1709년 개교한 이 학교에는 장애인 시설이 없었지만 손씨 입학 후 휠체어 이동시설을 만들었다. 학교 측은 손씨를 위해 이사회까지 열었다. 손씨는 이 학교 300년 역사에서 최초로 휠체어를 탄 학생이었다.

그는 학교의 지원과 본인의 노력으로 하버드와 스탠포드, 예일, 콜럼비아, 유펜, 브라운대에 동시 합격장을 받기도 했다. 하버드 재학시절에는 넓은 학교를 누비기 위해 휠체어에 전동기를 부착하고 다니다 경찰에 압수당하기도 했다. 교내 순찰을 돌던 경찰이 “폭발물일 가능성이 있다”며 강의실 바깥에 놔둔 전동기를 갖고 간 것이다. 그가 총장한테 “학습권 침해”라고 주장한 뒤에야 돌려받았다.

그는 학부시절 옛 사진 속 이미지를 분석해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찾는 역사 연구법을 고안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UN이 보유한 수많은 사진은 큰 도움이 됐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과 감정, 역사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계량화해 분석한 뒤 역사적으로 서술한 것이었다.

그의 역사 연구법은 하버드 교내 잡지 ‘가젯(Gazette)’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사는 졸업을 일주일 앞둔 5월23일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지도교수인 엠마 로스차일드와 순일 엠리스 등 하버드 교수와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는 미래 기술인 빅데이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사진을 통해 평범한 개인들의 인생을 추적할 수도 있다”는 그는 “2년 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영국, 독일에서 공개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를 열람해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씨가 이런 연구에 착안한 것은 역사가 보편적으로 강자와 승자 편에서 서술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씨는 “다양한 사진들이 머금고 있는 약자들의 삶을 역사화하는 작업을 통해 정확하고 진실된 역사를 형상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손씨는 “케임브리지대에서도 역사 연구에 매진해 박사 학위를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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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익씨가 2015년 하버드, 스텐포드, 예일 등 8개 대학에 동시 합격한 후 합격증을 펼쳐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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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익씨가 하버드대 재학 시절 학교를 방문한 인권운동가와 활짝 웃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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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익씨가 지난 8월 고려대를 방문해 정진택 총장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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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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