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70년대 영국 로큰롤과 영화 ‘아바타’ 뜻밖의 만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책&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⑬신이 주신 영감의 원천, 중국 장자제

공중섬·기암괴석으로 ‘아바타’에 영감 준 중국 장자제

1970년대 영국 록밴드 ‘예스’의 음반 표지에도 등장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항상 들뜨게 마련이다. 여행자의 마음속에는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도 존재한다. 때로는 그 두려움조차 짜릿한 흥분으로 변하기도 한다. 하물며 처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란.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는 모든 것이 설렌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행위는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 행위’보다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을 기다리는 마음에 그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생처음’ 떠나는 여행은 어떤 이유에서든 평생 잊기 힘들다. 그렇게 각별했던 중국 땅을 다시 밟는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넓은 땅이다. 중원 십팔만리를 종횡무진 살펴보려면 구대 문파가 등장하는 무협의 성지들을 방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면 신장웨이우얼(위구르)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등등. 하지만 말이 중국이지 처음 방문하는 학생에게는 그저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몇 번이고 공항 게이트 앞에서 여권을 열어봤던 기억이 새롭다. 모든 것이 다르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1989년 여름날의 중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미수교국인데다 직항 항로가 없었던 탓에 중국 본토에 입국하려면 홍콩을 경유해 들어가 입국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만난 만리장성, 자금성, 그리고 만주 벌판까지.

그 땅을 다시 밟는 데에는 20년이 걸렸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개봉되던 해였다. 중국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백두산 또는 창바이산을 이야기하고, 중국 곳곳의 명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80년대의 끝자락에 한 번 달랑 다녀온 것으로는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참 민망하다. 그런데, 영화 <아바타>를 보면 볼수록 궁금증이 더욱 배가된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총천연색 입체를 경험한 이야기에 높은 점수를 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화면 구성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어딘가 빈약한 것 같은 서사 구조와 함께 영화 속 배경이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표절을 한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그 진위는 둘째 치고, 영화 <아바타>가 주는 환상적인 입체 비주얼이 영화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음은 누구나 동의한다. 공중에 떠 있는 섬, 그 섬을 타고 아래로 떨어지는 공중 폭포, 기암괴석 등등. 그런데 이 자연 풍경들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래서 10년 전에 저지른 여행, 두 번째 중국 여행지가 바로 이번 회에 소개해드릴 곳, 중국 장자제(張家界, 張家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로저 딘의 작업

영화 <아바타>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맞지만, 서구 대중문화에서는 이 장자제의 흔적이 의외로 꽤 많다. 특히 대중음악과 로큰롤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70, 80년대 영국 로큰롤의 역사에 등장하는 밴드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과거의 음반 표지에 밴드 멤버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거나 가수의 얼굴만 크게 덩그러니 나와 있었다면, 70년대 로큰롤 밴드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음반 표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예스나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무디 블루스 등 60년대 말에서 70년대 후반을 관통하는 대중음악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욱 복잡한 시대였다. 결국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뮤직비디오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시대에 음반 표지가 매우 중요했던 시절로 기록된다. 이때 대중음악의 음반 표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이 있다. 그 가운데 로저 딘이라는 영국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확실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천공의 성 라퓨타>를 기획하던 시기보다 최소한 10년 이상 앞서 있었다.

세 번째로 다시 찾은 장자제. 이번에는 여행자가 아니라 여행을 인솔하는 출장 여행이다. 직업이 다양하다 보니, 작가나 방송인, 평론가의 직함이 아니라 여행업계 종사자로서 그룹을 인솔해 장자제를 방문한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쇠고기와 삼겹살은 더욱 많이 자주 먹을 것이다. 환전은 거의 필요 없다. 한국 원화가 통용되는 지역이니까. 현지 발음 장자제보다도 현지인들조차 이곳을 ‘장가계’라고 부를 때가 있다. 중국 제1호 국가삼림공원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어 간체만큼 많이 보이는 문자는 한글이다. 영어보다도 더 많이 보인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한글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안개와 구름 가득한 천문산과 대협곡에서 한글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영어나 일본어보다 더 많이 한글이 보인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에는 한참 시간이 걸려서 문제이긴 하다. 황룡동굴 안에서 발견한 출구 표시는 아무리 봐도 한자로 ‘안전출구’인데, 그 밑에 한글로는 ‘안전의 수출’이란다. 천문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내판에서도, 중국판 선녀와 나무꾼을 가극 형태로 만든 <천문호선> 한글 번역 자막도 한 번에 보고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그래도 중국 전역, 아니 세계 어디에 가도 한글이 제일 많이 보이는 곳은 중국 장자제일 것이다. 밤새 길게 이어지던 중국식 뮤지컬 <천문호선>이 끝나고 나면, <아바타>와 라퓨타, 그리고 로저 딘의 작품 소재가 된 아름다운 절경을 직접 볼 수 있다.

풍경과 미술, 음악의 하모니

장자제라는 이름만 보면, 이곳이 하나의 지역을 통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시 이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장자제는 중국의 행정구역상 하나의 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안에 원가계, 대협곡, 도동호수 등이 자리잡고 있다. 천문산을 방문할 때 언제나 그렇듯 장자제 특유의 구름과 안개가 가득하더니, 원가계로 이동하는 다음날에는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제임스 캐머런 같은 영화감독들이 이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보고 영감을 얻었단다. 하긴, 아무런 감동도 영감도 받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공중에 뜬 섬, 공중 폭포 등등.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일년 가운데 360일 이상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바람에 바위 위 끝머리만 공중부양한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그 실체가 환히 다 드러난다. 구름 한 점 없다. 신비감은 덜하지만 경외감은 최대치가 된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니 ‘천공의 성 라퓨타’가 보이고 <아바타>의 나비족과 익룡들이 보인다. 일러스트레이터 로저 딘의 환상적인 음반 표지들도 눈앞에 펼쳐진다. (위기)라든가 (깨지기 쉬운) 등은 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영국의 록 밴드 예스가 최전성기에 발표한 대중음악 역사 속 명반들이다. 그 음반에서 구현한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원가계와 대협곡의 아름다운 절경이 영감을 선사한 건 영화 <아바타>뿐만이 아니다. 70년대 영국 대중음악과 대중미술은 당시 개방 이전의 중국에 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약간의 왜곡과 함께. 영국인 일러스트 전문가 로저 딘은 홍콩 출생으로 유년기를 홍콩과 중국 남부에서 보내며 동양 문화와 미술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대중음악 일러스트 전문가들도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동양의 신비를 음악과 미술로 접목시키는 운동을 추진했다. 하지만 직접 보고 경험한 로저 딘은 그 결과물을 대중음악 음반 일러스트로 구체화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대중문화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문화 또는 대중미술의 가치를 늦게나마 인정받으면서 2010년 봄에 한 차례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겨레

중국 현지에서는,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 보지 않았다면 백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人生不到?家界, 百??能?老翁)라는 말이 있다고도 한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한 날에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도 장자제의 모습을 마음껏 유람했으니 글쓴이는 또 한 번 중국에 관한 좋은 기억을 담았다. 여행의 미덕은, 좋은 추억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 좋은 음악들과 문화의 담론을 담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중국 장자제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면서 70년대 영국 로큰롤을 듣는다는 것. 그것은 엉뚱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20세기 대중문화는 또 다른 담론을 만난다. 그것이 영화든,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그리고 다시 한번, 온종일 힘든 거리를 걸어 올라가신 ‘어머님들과 사장님들’을 글쓴이는 회상한다. 효도 관광은 그저 좋은 곳 유람하고 제때에 입에 맞는 좋은 음식을 드시는 일이다. 장자제는 이처럼 극과 극이 모두 공존하는 재미나고 유별난 곳이다.

음악평론가, 작가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