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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조국 사태, 진보를 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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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정의당, ‘조국 찬반 입장’ 놓고 안팎 비난·이견으로 몸살

주말 서초구 집회에 “대동단결” “비판 실종” 진영 내 엇갈린 평가도

다양한 목소리 표면화…진보 내부 ‘민주적 해결·성찰’ 시험대 될 듯

경향신문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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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노동운동가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조국 정국’에서 확인된 범진보 시민사회 간극을 ‘상처’라는 말로 설명했다. “불공정과 불평등 문제에 같은 인식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상위 10% 안에서 불평등 동맹을 맺고 있구나’ 하는, 속도 차는 있을지언정 함께 간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눈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한 교수는 “민주화 시기엔 진보든 보수든 ‘피아’ 구분이 뚜렷했기 때문에 진영 내부의 민주주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멀게는 민주화운동부터, 가까이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까지 유지된 ‘범진보’ ‘범개혁’단일대오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의 방점은 ‘발전적 미래’로 향했다. “의견이 엇갈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진보진영이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겁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범진보 시민사회 내 의견이 분분하다. “조국 사태가 진보를 가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보진영 내 상징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는 ‘조국 비판 실종’을 문제 삼은 내부 비판이 돌출했다. 정의당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 탈당 의사표명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조 장관에 대한 찬반 입장은 불평등·불공정 구조를 바꾸는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는 의견과 범진보 단일대오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경향신문은 여러 시민사회 인사들에게 이 갈등·간극 의미를 물었다. 여러 이견에서 공감대는 조국 정국 이후 범진보 시민사회가 풀기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참여연대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렸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후원을 철회하겠다’는 글이 쌓였다. 전날 김경율 전 집행위원장이 개인 페이스북에 조 장관을 옹호하는 진보지식인과 시민단체 구성원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다. 참여연대는 이날 홈페이지에 ‘김경율 회계사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은 참여연대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공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논란은 계속됐다. 김종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일시적 비난 여론에 등떠밀려 십수년 열과 성을 다해 활동한 사람을 내치는 것”이라며 “참여연대 탈회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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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의혹을 비판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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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면화한 간극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은 “참여연대가 대담한 발언과 입장 표명으로 회원이 떨어져 나갔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오랜 기간 성실히 활동해온 활동가를 징계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변호사와 홍 소장이 속한 단체는 진보 시민단체로 분류돼 왔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징계위 회부의 구체적 사유는 수위를 넘은 표현이지 조 장관에 대한 비판 의견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견은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갈등으로 쟁점화됐다.

이견이 나온 게 처음은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8일 조 장관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낼 때 내부 비판에 부딪혔다.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다가 거둬들인 진 교수는 지난달 30일 tbs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에 나와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서 미쳐버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신뢰했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존경했던 분들을 존경할 수 없게 되고, 의지했던 정당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 오래된 갈등인가, 새 전선인가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전문가·시민단체 활동가 대다수는 김 전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진보의 새로운 갈등을 드러냈다고 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누적된 문제가 이제야 고개를 들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경실련 관계자는 “시민사회 내에서는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에 문재인 정부가 잘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시민단체가) 잘해줘야 하느냐에서 차이가 있었다”면서 “사퇴 성명을 낸 경실련의 경우는 조국 사안에 침묵하면 앞으로 어떤 인사도 말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과거에도 해온 일”이라고 했다. 그는 “조 장관 일가의 수사 이후, 기소 이후, 재판 이후에 한국의 대다수 (범진보) 단체들은 침묵할 것 같은데 피해갈 노릇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국 사태에 침묵해선 안돼

예전에는 보수 핑계 됐지만

지금 상황은 그럴 수 없어


한 전 위원장은 조국 사태로 진보의 분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촛불이 보수를 갈라놨다면, 조국 사태는 진보를 가르고 있다고 본다”면서 “예전엔 보수진영의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진 않았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조 장관 임명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나오고 진보진영 내부에서 의견도 갈렸지만 (조 장관을 지지하는 쪽은) 일단은 대동단결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경험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내부총질’로 정권이 망가지고 나면 조기 레임덕이 오는 등 진영에 더 큰 손상이 올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 갈등 이후, 진보의 과제

간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변화 동력으로 삼을지를 두고는 다양한 진단이 나왔다. 한 진보진영 인사는 “여진은 오래갈 것”이라면서도 “시민사회는 일사불란한 공무원 조직이 아니다. 치고받는 게 건강하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다투면서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평론가도 “일사불란하게 집결하는 게 정답인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면서 “(검찰개혁이라는) 목표 달성 자체가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달성 이후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했다.

수단·방법 안 가리면 후유증

불평등 문제에도 관심 둬야


‘조국 사태’로 드러난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전 위원장은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각하다. 부정 문제가 있었다고 반성의 목소리를 낸 다음 검찰개혁을 하자고 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국회 다수를 점하기 어려워 검찰개혁도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상위 10%의 성채 안에서 합법적으로 동맹을 맺는 ‘불평등 동맹’ 문제를 인식하고 출발선부터 다른 경주를 바로잡아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짚었다.

지지층선 ‘내부총질’ 시선도

조 장관 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지난 24일 “불법체류 외국인이 급증한 원인을 분석하고 수를 감축할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백선영 민주노총 미조직전략부장은 “이주민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내국인보다 낮은데, 이주민을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노동자 등이 여는 집회에 엄중대처하겠다는 (조 장관) 발언도 문제”라며 “노동자, 약자에 대한 정책이 있어야 검찰개혁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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