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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여성들도 BTS 열광… "따라부르려 2년간 한국어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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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3] 한글 흥행 주역이 된 K팝

주말 사우디 공연 3만명 '떼창'

BTS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소식·영상서 한국어만 쓰다보니 전세계 팬들도 한글 공부에 몰두

지난 11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방탄소년단(BTS) 노래 '디오니소스'가 흘러나오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가린 3만여 관객이 함성을 쏟아냈다. 중동 각 지역에서 온 아미(ARMY)들은 BTS가 무대에 나오기 전부터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눈을 제외한 신체 모두를 가렸지만 보랏빛 응원봉을 흔들며 온몸으로 BTS를 맞이했다.

비아랍권 가수가 사우디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것은 BTS가 최초다. 킹파드 스타디움에는 공연 전날인 10일부터 아미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리야드에 사는 호다(23)는 "2009년 슈퍼주니어 뮤직비디오를 보고 처음 K팝을 알았고, 2013년 BTS가 데뷔한 뒤로 그들의 팬이 됐다"고 했다. 바레인, 요르단 등 중동 다른 지역의 아미들도 찾아왔다. 시리아에서 온 니나(17)는 "정국을 가장 좋아한다. BTS 말을 알아듣기 위해 2년 동안 유튜브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에서 온 다나(19)와 하누프(18)는 "어려운 단어 몇 개 빼고는 다 읽을 수 있다"며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어 전파의 주역 된 아이돌

BTS 콘서트에 온 여성들은 얼굴만 내놓는 아바야를 착용했지만 3시간 넘는 공연에서 한국어로 '떼창'을 부르며 열광했다. 랩도 거침없었다. 공연 30분 전 이슬람 기도 시간 '살라'가 되자 청중들은 자기 자리에서 절을 수십 차례 올린 뒤 다시 열창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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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차로 10시간 걸리는 사우디 도시 제다에서 왔다는 고순(20), 셰이마(20), 알라(27) 사미라(23). 손에 든 플래카드에는 ‘윤기 오빠 결혼하자’ 같은 한글 문구가 적혀 있다. 사미라는 “직접 한글로 적은 다음 오려붙여 만들었다”고 했다. 알라도 “BTS가 하는 말을 알고 싶어서 유튜브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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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우리말 홍보대사가 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걸 그룹 원더걸스와 가수 비가 미국 시장에 발을 내디뎠고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유행시키면서 한국과 한글을 알렸다. 이후 빅뱅, 엑소, 블랙핑크 같은 3세대 아이돌 그룹이 세계로 진출하며 우리말을 퍼뜨렸다.

BTS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빌보드 차트에 3번이나 이름을 올리며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들고 있는 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소식과 노랫말, 동영상에서 한국어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유럽, 북미 등 곳곳에 퍼져 있는 아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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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공연하는 BTS.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노출 의상을 최소화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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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에서 왔다는 세 모녀 하우라(42), 파티마(21), 부르칸(18)은 한국말로 대화했다. 파티마는 "BTS의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를 보고 팬이 돼 한글을 배운다"며 "바레인 세종학당에서 기역, 니은, 디귿부터 배웠다"고 했다. 동생 부르칸은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고 집에서도 한국말을 자주 쓴다"며 "엄마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갑시다!'"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한영어'를 아십니까?

영어 문장에 한국어를 섞어 쓰는 10~20대들도 생겼다. 영어로 바꿔 쓸 수 있는 단어들도 한국어 그대로 사용한다. 일명 '한영어'다. '왜'를 'Why' 대신 'Wae'로, '친구'는 'chingu'로 적는다. 'I JINJA want to make Korean CHINGU(나는 진짜 한국 친구를 만들고 싶다)'처럼 문장에 한국말을 넣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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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한류 팬 5200여명을 조사한 결과 K팝을 듣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 가사의 독특한 발음'이었다. 중국, 러시아, 남아공에선 한국어 가사가 특이해 K팝을 듣는다는 사람이 전체의 20%나 됐다. 리야드의 프린스 술탄 대학교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는 이미란씨는 "이미 한국어를 잘하는 상태로 수업 들으러 오는 학생이 많다. 다른 학교에서 찾아와 추가 등록금을 내고라도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리야드=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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