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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김일성 경기장 패배는 없다?…식사부터 잔디까지 의도된 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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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오후 3시 30분 숙소에서 경기장 출발

5시 30분 생방송 없이 이메일 '속보' 의존해야

인조잔디 김일성 경기장, 선수들 적응이 숙제

北 2005년 패배 이후 김일성 경기장선 계속 승리

15일 오후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2022년) 조별 예선경기는 결국 ‘북한식’이다. 한국 선수단은 이날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3시 30분 경기가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으로 향했다. 선수단은 앞서 오후 1시 20분쯤 모여 전의를 다지는 팀 미팅도 했다. 그러나 오후 5시 30분 경기가 열린다는 경기 시작 시간 이외에, 선수단이 호텔을 나선 이후는 깜깜이다. 북측이 핸드폰을 지급하지 않았고, 선수단과 접촉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 없어서다. 숙소에 상황실이 마련돼 있지만 평양에서 서울로 발신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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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훈련에 나섰다. [대한축구협회 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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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월드컵과 같은 인기 종목의 경우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응원단이 원정응원에 나서고, 생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기 장면을 시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생중계가 무산됨에 따라 평양에 있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e메일로 경기 상황을 요약해 전하고, 통일부와 축구협회가 기자들에게 내용을 알리는 ‘전근대적인’ 방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날 열린 한국 선수단의 기자회견 역시 북한 매체 소속 기자 5명만 참석해 진행하는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회견이 되고 말았다. 북한이 취재진과 응원단의 방북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경기장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는 축구협회 관계자 2명이 기자 출입증을 받아 ‘1일 기자’ 역할을 하게 됐다.

선수단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서도 1시간이 넘는 입국 심사 절차를 밟아야 했다. 정부 당국자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지는 않지만 북한은 국제선이 하루에 한두 편밖에 없어 공항이 붐비지 않기 때문에 입국 심사에 시간이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며 “북한이 편의를 봐 줄 경우 얼굴만 확인하고 급행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원칙대로 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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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 북한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공식훈련을 하고 있다. 2019.10.15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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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북한이 최고급 숙박시설인 고려호텔을 내어 준 것이나, 외부와 통신환경을 단절한 속에서도 서울로 전화할 수 있도록 한 건 나름 성의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경기에 앞서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에도 동의했고, 14일 예행연습도 했다.

그럼에도 직통전화 설치를 하지 않거나 내부용 핸드폰 지급을 하지 않고, 단 한 명의 응원단을 허용치 않은 건 사실상 홀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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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 북한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1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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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북한이 이번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사정을 인정하지 않은 건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는 관측이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3월말 남측과 접촉하지 말라는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며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국제 경기를 통해 자신들이 한국에 서운해하고 있음을 내색하는 기색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남북은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오가며 남북관계 진전을 이뤘다. 이번 경기 역시 대규모 응원단이 오가며 교류의 물꼬를 트면 정치적인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북한이 사전에 이를 의식한 뒤 행동으로 차단한 셈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축구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방에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측면도 제기된다. 선수단이 중국(베이징)을 거쳐 이동할 경우, 직항에 비해 피로도가 쌓이고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다. 북한은 이를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도착 직후 현지 적응 훈련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은 인조잔디를 깔아 놨는데, 천연잔디에 익숙한 한국 선수보다 북한 선수에게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남북 예선전이 치러지는 김일성 경기장의 상징성도 거론된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김일성 경기장은 일본강점기 해외에 있던 김일성 주석이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 귀환해 처음으로 연설한 곳에 세워진 경기장”이라며 “북한 내부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만큼 선수들로선 져서는 안 되는장소인데다 상대편에겐 위압감을 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5일 이곳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예선전에서 2대 0으로 승리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2005년 3월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이란에게 0대 2로 패했던 경기 이후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국제 경기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리면 평양 주민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홈팀의 이점이 작용한다. 2017년 이곳에서 경기를 펼쳤던 여자 축구대표팀 지소연 선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경기 시작 전 북한 선수들이 ‘죽이자’하고 나와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는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전세기로 평양을 방문해 관람할 예정이다. 정부 당국자는 “FIFA가 2023년 여자 월드컵을 남북 공동으로 개최하는 안을 제안해 놓은 상황”이라며 “인판티노 회장이 남북 경기에 관심이 많고, 방북 기간 이 문제를 북측과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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