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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일흔셋 할머니 감독 “영화가 힘든 엄마들에게 용기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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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달 7일 경기 부천시 복사골문화센터 6층 부천문화재단 시민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강복녀씨.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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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2019 서울노인영화제’ 본선에 올라 우수상을 받은 1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일생’을 연출한 강복녀(73)씨는 영화에 직접 출연해 이 같이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영화는 ‘행복’이 아닌 ‘시련’을 얘기하고 있다.

영화는 “나도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시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란 강씨의 내레이션과 함께 노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과 영상, 사진, 그림을 통해 ‘시련’으로 점철된 자신의 일생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줄거리는 아내에게 최악이다. 남편은 수면 중에 간질(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사실도 숨기고 결혼한 데다, 술과 노름에 빠져든다. 시댁 식구는 하루 아침에 집과 공장이 있는 땅을 빼앗다시피 되찾아 간다. 남편 노름빚으로 집을 잃고 삼 남매와 함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일주일을 지낸 기억 등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 경기 부천시 복사골문화센터에 있는 부천문화재단 시민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강씨는 “(다른 영화와 달리) 내 속내를, 일생을 다 보여주는 것이라서 (영화 관련) 질문을 받을 때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어렵고 힘들게 사는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해 조금만 참고 견디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나의 일생’은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자녀를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이 자녀의 기둥이고 보금자리이고 안식처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지치고 힘든 엄마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강씨의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지난해 서울노인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우리 하람이를 위한 할미의 편지(7분·다큐멘터리)’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폐성장애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중학생 손자 얘기를 전한 이 영화는 2017년 제작됐다.

그는 “첫 손자이자 하나뿐인 손자인데, 부모가 이혼해 엄마 없이 자랐다”라며 “젊은이들에게 부부간에 불화가 있고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도 아이를 버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도 참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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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녀씨가 지난해 11월 경기 부천시 복사골문화센터 6층 부천문화재단 시민미디어센터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부천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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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엿한 영화감독으로 불리고 있지만, 영화와 강씨의 인연이 일찍 시작된 건 아니다. 강씨가 영화를 찍기 시작한 건 일흔을 바라보던 2015년부터다. 그는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 알게 된 언니가 시민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미디어 제작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오랫동안 권했다”라며 “살기 바빠서 꿈도 못 꾸다가 애들이 커서 나를 도와주고 취미도 가져보라고 해서 들어가게 됐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했고 TV에 나오는 것처럼 카메라로 촬영도 해보고 싶었다”는 강씨는 그때부터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빌리거나 직접 구입해 이것저것 찍었다. 동아리에서 촬영은 물론 영상 편집도 배웠다. 그렇게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편의 영화를 찍었다. 서울노인영화제 본선에 오른 두 작품을 포함해 ‘외로운 사람’ ‘행복한 삶’ ‘건강이 최고다’ ‘무더위를 피하다’ 등이다. 이중 4편은 정식으로 출품도 했다.

강씨의 머리 속엔 이미 다음 작품 주제까지 정해졌다. 다문화 가정의 결혼 이주 여성이 강씨 차기 작품의 주인공이다. 강씨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사는지,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영화에 담아보고 싶어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 모습도 이미 찍어놨다”라며 “우리나라도 옛날에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여자아이를 남의 집에 보내고 했는데, 그런 비슷한 모습을 그려보려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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