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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음식과 술의 환상적 궁합… 정답은 없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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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엔 레드·생선엔 화이트’ 안전 공식일 뿐 / 식재료 적합해도 양념·소스따라 와인 달라져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각 지역 산지에서 채집한 신선한 농산물, 좋은 비료와 올바른 사육 방식으로 자란 축산물, 자신만의 창의력을 발휘해 훌륭한 요리로 발전시키는 셰프, 쾌적한 환경에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요리를 전달하는 홀서비스, 그리고 요리의 맛을 배가하는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날의 식사는 성공이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그 나라의 음식과 식문화를 함께 즐기며 발견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식과 술의 궁합이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는 ‘페어링(Pairing)’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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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의 맛을 극대화하는 페어링

식탁에서의 페어링은 음식과 술의 궁합을 맞추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다른말로 마리아주(Mariage) 라고도 한다. 이는 결혼을 뜻하는 불어로 남녀 사이의 궁합을 뜻하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훌륭한 궁합을 보일 때 결혼에 골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음식과 술의 궁합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나라도 미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미식가들은 ‘이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선 어떤 술을 먹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식탁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해진 페어링 법칙이 있을까. 대답은 “NO’다.

와인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식재료에 적합한 와인을 선정해도 어떤 소스와 양념을 뿌렸느냐에 따라 와인은 달라져야 한다. 같은 맛이어도 육수 유무에 따라 와인의 바디감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날의 날씨나 실내온도, 상황, 사람 등 식탁을 벗어난 외부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A=B’라는 방정식은 성립될 수 없다. ‘고기엔 레드, 생선엔 화이트’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궁합일 뿐 정답은 아니다.

# 테루아로 맞추는 페어링

하지만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술은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테루아(Terroir)다. 이는 토양을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재배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본래 와인 용어이지만 ‘그 나라 음식에는 그 나라 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꽤 많은 미식가와 주류 전문가, 여행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 음식은 그 지역 토착 술과 먹을 때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대문시장에서 갈치조림을 먹을 땐 소주와 맥주가 가장 편하게 어울리고, 중국 양꼬치집에 가면 당연하듯 중국 맥주와 고량주를 주문하게 된다. 일본 스시를 먹을 때는 사케나 소주를 찾고, 미국 수제버거를 먹을 땐 수제 IPA 맥주를 찾게 된다. 이는 음식을 섭취할 때 발생하는 인지적인 호르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각의 지배(The Omnivorous Mind)’를 쓴 존 앨런의 연구에 따르면 맛을 보는 기관은 혀가 아니라 두뇌고, 두뇌는 대를 이어 전수된 가치 기준을 따르는 문화적 결정 기관이다. 맛은 단순히 물리적인 맛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나 전통,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식과 술이 같은 지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친 것이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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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가지 맛으로 맞추는 페어링

해외 잡지와 책자를 살펴보고, 다양한 술의 세계에 입문해보니 맛의 여섯 가지의 요소도 페어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먼저 지방(Fat). 기름진 음식일수록 산도, 타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면 좋다. 해외 요리책을 보다보면 ‘산도는 지방을 줄여준다(Acid cuts the fat)’는 말을 볼 수 있다. 이는 주방에서 지방이 많은 식재료를 조리할 때 산도가 높은 음식을 활용하면 지방이 수용성으로 바뀌어 몸의 흡수를 줄여준다는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기름이 닦이지 않는 경우 식초, 김빠진 콜라, 베이킹소다와 같이 산성 또는 약알칼리 성분으로 닦으면 쉽게 닦인다.

두 번째는 염분이다. 짭쪼롬한 맛은 의외로 와인의 쓴맛과 신맛을 줄여줘서 와인의 복합적인 풍미를 더 살려준다. 예를 들어 김치나 젓갈과 같은 짭쪼롬한 한식을 먹을 때 산미가 있고, 타닌감이 강한 와인을 먹으면 와인 본연의 맛은 잃지 안되, 입 안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해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산도. 음식과 와인의 산도는 비슷한 것이 좋다. 새콤한 소비뇽블랑과 피노그리조, 리즐링을 새콤한 태국음식이나 세비체 같은 남미 음식과 먹어본다면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당도. 달콤한 와인은 달콤한 디저트나 새콤한 에피타이저와 함께 먹으면 좋다. 당도가 높은 와인은 산도가 강한 음식의 산미를 중화시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쓴맛인데 호불호가 강한 요소다. 쓴맛인 타닌이 강한 와인을 쌉싸름한 맛이 강한 음식과 먹거나 달콤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쓴맛을 더 높일 수 있다. 극단적인 양극의 페어링을 초래할 수 있어 이 조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섯 번째 요소는 질감으로, 섬세한 음식에는 타닌과 알코올이 약한 와인을,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에는 타닌과 알코올이 강한 와인이 어울린다. 쉽게 말해 끼리끼리 맞추지 않으면 음식이나 와인이 밀릴 수 있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좋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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