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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약주란 어떤 술인가 [명욱의 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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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주(藥酒)’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쓴다. 외국에서도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정말 약용으로 사용할 때만 붙인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술에도 약이라는 단어를 꽤나 붙인다.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일보

한국의 다양한 수제 약주. 약재가 없어도 약주라고 불려야 한다. 명욱 칼럼니스트 제공


첫 번째 가설은 약이 될 만큼 귀하다는 의미다. 양념의 어원이 바로 ‘약념(藥念)’이라는 것이다. 약이 될 만큼 고민해서 맛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약이라는 것은 ‘귀하다’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두 번째는 ‘약고개’에서 만들어진 술이라는 설이다. 약고개는 서울 중림동의 옛 이름으로, 한자로는 약현(藥峴)이 된다. 이곳에는 서성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술 빚는 것이 빼어나 약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는 조선시대의 금주령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조선은 흉년이 들 때마다 금주령을 내리면서 절제와 절약을 추구했는데, 면제되는 항목이 관혼상제, 생업주조 그리고 약용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결국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무조건 술을 약으로 마셔야 했고, 약으로 마시지 않더라도 약으로 마신다고 말을 해야 화를 면했다. 탁주, 청주, 소주까지 모두 망라한 술에 대한 총칭이기도 했다.

법률상의 약주는 이러한 의미와는 달리 굉장히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전분질 원료를 발효해서 여과한 술이다. 즉 약재를 전혀 넣지 않고, 순수하게 쌀로만 만든 맑은 술도 약주가 된다. 그리고 한국의 토종 누룩을 무조건 1% 이상 넣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청주는 무엇일까? 청주는 말 그대로 맑은술이다. 하지만 주세법상으로 들어가면 역시 좁아진다. 약주와 가장 다른 점은 토종 누룩을 1% 미만으로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 누룩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 부분이 한국 전통주라고 부를 수도 없고, 반대로 우리 술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부분이다. 이렇게 나뉜 이유는 우리 술에 대한 이해도가 없던 일제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술은 청주, 한국의 술은 탁주와 약주로 나눠놨기 때문이다.

현재 법률상의 약주, 나아가 청주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 약주는 너무 좁은 의미로 기술되어 있으며, 청주는 우리 전통 누룩을 사용하면 청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이러한 간극이 한국 전통주에 대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한류가 이렇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했다. 한국의 전통주도 충분히 한류처럼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기본인 법령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우리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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