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한반도 온난화로 ‘농작물 지도’가 바뀐다](1)감귤, 이젠 제주만의 특산품 아니다…중부 내륙까지 재배 확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진주산 ‘레드향’·영동산 ‘황금향’ 지난 1월 경남 진주시 대평면 한 감귤류 재배 농장에서 농민이 레드향을 수확하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 24일 충북 영동군 산청면 초강리 김미순씨가 자신의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있는 황금향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삭 기자·진주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의 연평균 기온(강릉·서울·인천·대구·부산·목포 6개 관측 지점 기준)은 1.7도가량 상승했다. 세계 평균 온도가 0.74도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더욱 뚜렷하게 상승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기후변화로 인해 백두대간과 인접한 고랭지와 비무장지대(DMZ) 인근 지역이 고품질의 사과 주산지로 부상했고, 제주도의 특산물처럼 여겨지던 감귤류도 내륙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21세기 후반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아열대기후로 바뀔 것이란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커피, 망고 등 아열대 작물 재배도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다문화가정의 증가와 소비패턴의 변화도 농작물 지도를 바꾸고 있다. 농작물의 주산지 이동실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농업분야의 연구·개발 상황 등을 살펴보는 기획기사를 5회에 걸쳐 싣는다.


밀감·한라봉·천혜향·황금향 등 감귤류는 더 이상 제주도만의 특산품이 아니다. 전남 고흥, 경남 통영·진주 등을 거쳐 북상하기 시작한 감귤류 재배지가 수년 전부터 충북과 경북, 경기 남부지역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남해안 일대 내륙으로 첫발을 내디딘 지 40여년 만에 아열대성 작물인 감귤류의 재배지는 300~350㎞가량 북상했다. 급속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1세기 후반엔 강원 해안지역에서도 감귤류 재배가 가능할 것이란 예측도 잇따른다.

고흥·통영·진주 등 거쳐 북상

영주·영동 등 대체작목 육성

수년 전부터 평택서도 재배

21세기 후반 강원 해안 가능


지난달 24일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이병덕(63)·김미순(53)씨 부부의 농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황금향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포도·와인산업 특구로 2200여 농가가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영동군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1487㎡ 규모의 시설하우스 안에 심어진 90여그루의 황금향 나무엔 초록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미 노란색으로 익은 것도 종종 눈에 띄었다. 황금향은 일반 감귤에 비해 늦게 수확하는 만감류다. 이들은 1999년부터 포도농사를 짓다가 폐원한 뒤 2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황금향 묘목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포도의 상품성이 떨어져 제주도에서 자라는 감귤류를 키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보다 기온이 낮아 농사를 망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황금향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며 “지난해 겨울 동안 사용한 난방비도 100만원 정도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올해 수확물량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본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최근 4300㎡ 규모의 농장에 천혜향 묘목을 심는 등 감귤류 재배를 지속적으로 늘려갈 생각이다.

김씨는 “제주도보다 물류비용이 저렴하고, 아직까지 많은 농가들이 재배하지 않고 있는 작물이어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지역에서는 현재 60농가가 19.61㏊의 농장에서 만감류와 용과 등 아열대 작물을 재배 중이다.

경북 영주시도 지난해 3월 풍기읍 전구리 한 농가의 시설하우스 2000㎡에 한라봉과 레드향 묘목을 300그루씩 심어 실증재배에 들어갔다. 영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4년 전부터 시험재배를 통해 수확한 한라봉과 레드향의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자 ‘기후변화 대체작목’으로 육성키로 한 것이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평택 등 경기 남부지역 농가들도 주소비층인 수도권 소비자들을 겨냥해 3~4년 전부터 한라봉과 황금향 등의 재배지를 넓히고 있다. 이 일대 농민들은 “경기도산은 유통 거리가 짧아 싱싱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부 내륙에 비해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남지역 등에선 일반 밀감의 노지재배도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선 현재 덜 익은 청귤(어린 밀감) 수확이 한창이다. 청귤이 면역력 강화나 노화 예방,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해마다 수요가 늘고 있다. 욕지도의 50여 농가는 18㏊에서 밀감을 재배해 연간 180t가량을 생산한다. 유기질 토양에 일조량이 많은 욕지도에서 생산되는 밀감은 당도가 높고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욕지도 도동마을에서 7600㎡ 규모의 밀감 농사를 짓는 조광현씨(60)는 “청귤을 수확한 뒤 11월이나 12월쯤 노랗게 익은 밀감을 본격 출하할 예정”이라며 “이곳의 밀감이 제주도산보다 값이 비싸기 때문에 벌이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통영시는 2023년까지 욕지도의 감귤류 재배 면적을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밀감의 노지재배 위주에서 벗어나 시설하우스를 이용한 천혜향·레드향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달콤한 맛이 일품인 전남 나주의 한라봉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과실의 당도를 결정하는 연중 일조량이 제주지역보다 연평균 400~600시간가량 많은 나주지역에서는 현재 51개 농가가 26㏊에서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다. 나주지역 농민들은 “이곳에서는 무농약·친환경 농법으로 한라봉을 재배해 안전성 면에서도 뛰어나다”고 자랑한다.

노동력·물류비용도 덜 들어

67개 시·군 741농가로 늘어

육지 재배 더욱 확대 가능성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제주를 뺀 국내 감귤류(유자를 제외한 10개 품종) 재배 면적은 2010년 54㏊, 2014년 119㏊, 2016년 140㏊, 2019년 5월 222.2㏊ 등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감귤류를 재배하는 자치단체와 농가 수도 2016년 46개 시·군 430개 농가에서 2019년 5월 67개 시·군 741개 농가로 늘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좌재호 연구사는 “기후변화와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다른 작물에 비해 노동력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 감귤 재배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훈·배명재·이삭 기자 jhkim@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