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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선장 없는데… 맞은편 배 피하고 S자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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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장목항 앞바다에서 소형 선박에 올라탔다.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 선박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바다 위에서 폭 500m, 길이 500m 구간을 'S'자 모양을 두 번 그리며 안정적으로 운항했다. 직선 구간에서는 12노트까지 끌어올렸고 변침(變針)할 때는 속도를 낮춰 부드럽게 방향 전환을 했다. 배에 타는 동안 불안한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승선감(乘船感)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비즈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장목항 앞바다에서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민간용 무인 수상정 '아우라'가 운전자 없이 스스로 'S'자 모양을 그리며 운항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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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첨단 방산전자 시스템 업체인 한화시스템이 독자 개발한 민간용 무인 수상정 'AURA'(아우라)였다. 국내에서 이 선박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일반인이 탑승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배은현 한화시스템 해양시스템 2팀장은 "평균 20노트(1노트=시속 1.852㎞) 속도로 12시간 동안 운항하며 감시·정찰 임무 등을 수행할 수 있다"며 "인공지능(AI)·GPS(위성항법장치)·IMU(관성측정장치)·레이다 분석 기능 등 최신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배"라고 말했다.

◇4년간 개발, 충돌 피하는 기술까지 적용

길이 6m, 무게 1.2t인 이 배는 강에서 수상스키를 매달고 가는 모터보트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선체에는 탑처럼 생긴 철제 구조물에 레이다·통신장비·CC(폐쇄회로)TV 등이 달려 있었고 선체 바닥에는 통합제어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육상에서 연구원이 전용 콘솔(조종용 장비)에 경로 정보와 운항 속도 등을 입력해 전송하니 배가 이 정보에 따라 운항했다. 운항 오차범위는 최대 18m에 불과하다.

최병웅 수석연구원은 "특히 이 배에는 국제해상충돌방지규칙(COLREG)을 기반으로 한 충돌회피기술까지 적용돼 선박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면서 "충돌회피기술이 실해역에서 검증된 민간용 무인 선박은 국내에서 이 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배에 장착된 각종 센서로 전방에서 다가오는 배를 감지해 우회하거나, 전방에서 천천히 가는 배를 추월할 수도 있고, 뒤에서 추월하려는 배와도 충돌하지 않도록 피해서 운항할 수 있다. 자율주행 운항을 위해선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무인 수상정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영국·이스라엘 정도다. 이 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무인 수상정을 개발해 주로 해상 감시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화시스템이 2015년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군용 무인 수상정 개발에 착수해 지난 8월 복합 임무 무인 수상정(m 서처) 개발을 완료했다. 아우라는 M-서처에 들어간 자율주행 기술을 그대로 적용해 한화시스템이 자체 개발한 민간용 선박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기밀이라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개발 비용만 수백억원이 들어간 프로젝트"라며 "해외와 달리 우리는 민간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아우라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무인 선박 시장 2037년 9조원대로 커져

이미 상용화된 드론(무인기)이나 차량용 자율주행기술에 비해 무인 선박의 개발 속도는 늦은 편이다. 배 팀장은 "바다에서는 파도·바람·조류와 같은 자연조건부터 육지와의 무선통신 거리 등 각종 기술적 여건까지 따져야 해 육지·하늘보다 개발이 더 까다롭다"고 했다. 기상 조건만 고려하면 되는 하늘이나 차선이 그려진 도로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무인 선박의 수요가 자동차·드론보다 부족한 것도 기술 개발이 더디게 만든 요인이 됐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이 연간 인도하는 선박은 60~70척에 불과하다. 무인 선박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실제 적용할 선박이 부족해 수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최 수석연구원은 "최대 12시간까지 쉬지 않고 운항이 가능해 군의 해안 감시용이나 중국 어선을 상대하는 해경 경비선, 구조선과 같은 틈새시장에서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전 세계 무인 선박 시장은 지난해 5억3400만달러(약 6300억원)에서 2023년에는 10억2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13.8%씩 시장이 성장하는 것이다.

김규백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장(상무)은 "해양 무인 기술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용화를 위한 기술 준비는 모두 끝났다"며 "미국·중국 등이 앞서가고 있는 자율주행차·드론과 달리 무인 선박은 선진국과 기술 격차도 크지 않아 우리가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거제(경남)=김강한 기자(kimstr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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