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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할리우드가 오마주한 빗속 액션…영상미학 각인시킨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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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76)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감독 이명세(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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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열기로 뜨겁던 1980년대 말,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다소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리얼리즘 영화가 대세였던 시기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트러뜨려놓은 데뷔작 <개그맨>(1988)은 말 그대로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평단과 관객은 정치적 지향성이 배제된 이 작품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다음 작품인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부터 혁신적 스타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명세는 90년대 내내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며 거장의 반열에 합류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는 그의 독창적인 영상 미학과 대중성이 가장 적절히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을 세세히 적자면 책 한권이 필요할 것이고, 코멘터리를 단다면 러닝 타임의 몇배는 소요될 것이다. 흑백 이미지로 두 형사 캐릭터를 소개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노란 은행잎과 비지스의 음악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40계단 살인 사건, 건달과의 몸싸움을 실루엣 댄스로 처리한 신, 형사들이 잠복근무 중 설렁탕을 상상하는 장면, 눈과 지폐가 함께 날리는 기차 신 등을 거쳐 할리우드의 감독들이 오마주를 바칠 만큼 황홀한 폐광 액션 신까지, 이 영화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장면을 찾기가 어렵다. 우영구(박중훈)와 김동석(장동건)을 비롯한 강력반 형사들이 신출귀몰한 살인자 장성민(안성기)을 쫓는다는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고속 촬영, 프리즈 프레임, 애니메이션, 점프 컷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감각적인 영상은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거칠면서도 유머러스한 우영구, 대사 없이 눈빛으로 카리스마를 내뿜는 장성민 등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오직 범인을 잡기 위해 죽음까지 감수하는 형사들의 애환과 동료애는 세련된 이미지들에 잠식되어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에 온도를 높인다. 에필로그 부분에서 동료 형사들이 중상을 입은 김동석의 병상 주위로 모여드는 장면은 짧지만 뭉클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세기말의 우리 관객들에게 이미지와 감성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미학을 깊이 각인시킨 작품이다.

윤성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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