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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의 100세 시대 생애설계 ] 청춘은 인생의 한 시절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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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람들은 청춘은 청년의 전유물처럼 생각하여 나이로만 청춘을 따지고 마음으로 청춘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은 청년의 나이가 지나감을 아쉬워하면서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위로할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청년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잘 알면서도 무의식으로는 청춘(“나이의 청춘”이라 함)이 계속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중년에 접어들면 나이의 청춘이 지나갔음을 아쉬워하면서 또 무의식적으로 중년이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중년을 지나면서도 아직도 신체적으로는 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이의 청춘이 계속되리라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 생각하지만 실제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그것은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나이와 관계없는 청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흔히들 생각하는 “마음은 청춘”은 청년시절 같은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대체로 본능적 심리에 많이 치중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청춘의 심리상태에 있더라도 생각만으로 한정되고 태도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마음만 청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와 관계없는 또 하나의 청춘은 바로 "마음과 태도와 행동의 청춘“이다. 이러한 의미의 청춘은 바로 사무엘 얼만의 시에서 말하는 “열정, 용기, 희망, 호기심, 모험심, 상상력을 실제로 발휘하는 것”의 청춘이다. 이런 청춘은 청년에게는 물론 청년기 이후에도 모든 사람이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청춘은 누구라도 원하는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과 태도와 행동의 청춘”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각자 인생의 사명을 확립하고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설정한 목표일 것이다. 이 사명 확립과 목표 설정은 생애설계의 핵심적 내용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 생애주기마다 나타나는 상황이나 상태는 그 생애주기의 나이나 시점이 되지 않으면 확실히 느끼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년들은 청년기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중년이 되어서도 중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믿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인 중년기나 노년기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못한다. 또한 청년기에는 중년의 상태와 노년의 상태를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년이나 노년의 깊은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년이나 노년의 모습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자기에게 다가 올 생애주기의 여러 측면의 마음 상태를 깊이 알기 어렵다.

부모나 선배들이 때때로 생애주기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이야기하고 후회하면서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태도나 자세를 가질 것을 권면한다. 하지만 아직 그 생애주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로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소리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날은 부모나 선배들의 삶과는 다를 것이고 더 발전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일은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조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안이하게 살아간다. 인류역사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부모나 선배의 경험이나 조언을 듣고 진정한 교훈을 얻었다면 인류사회는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개인도 부모나 선배의 경험과 조언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면 더 만족스럽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나이, 특정 시점이 되어 진정으로 느끼고 체험한 후에서야 부모나 선배들 이야기를 잘 들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뒤늦은 후회는 인류사회도 개인도 수없이 반복해 오고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애주기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특정 나이, 특정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에 노년기에 대한 이해를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평균수명이 별로 길지 못했던 시대에는 사람들은 “노후가 그런 것이 인생이야,” “사람 일생이란 다 그런 거야”라고 생각하며 퇴직 후 10-15년 정도 사는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60세 이후 30-40년의 긴 여생이 주어지는 100세 시대에는 “그 나이, 그 때가 되어야 안다”는 생각이나 말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와서 인간 수명의 혁명(노화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하고 안이한 생각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과학적 연구에서 미래 장수자의 삶과 고령화 사회의 모습이 예측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대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류사회 발전의 결과이자 위대한 업적인 장수사회의 실현 속도는 20세기까지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평균수명이 100세까지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빠르게 연장되고 있는 인생, 100세 인생은 노년기 또는 노후만의 연장이 아니라 생애 전체가 연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애주기 단계의 재조정과 생애주기 전체에 대한 설계의 필요성과 실천의 중요성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고 그 대책으로 노후설계 아닌 생애설계의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WHO, 2015). 이런 상황에서 특정 나이, 특정 시점이 되어야 알 수 있다는 것은 위안도 핑계도 될 수 없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이제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예측된 미래의 장수사회를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생애주기 전체에 대한 계획과 실천만이 장수사회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자신이 공감할 수 없더라도 장수사회에 대한 대응책은 예측 가능한 과학적 지식이므로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판단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최성재 - (사)한국생애설계협회 회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IAGG) UN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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