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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이돌처럼 문학상도 투표로 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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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표된 심훈문학대상

작가·평론가·독자로 구성된 심사위원 100명이 투표로 선정

"독자 참여 통해 불신 바꾸고파"

"김중혁 작가는 박물관장 같아요.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온갖 이야기들을 모아 거대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보여주는 사람이 아닐까…."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독자가 먼저 알아봤죠. 조남주 소설은 삶 속에서 작은 상상들을 던지면서 페미니즘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줘요."

조선일보

지난 8월 말 충남 당진에서 열린 '심훈문학대상 챌린지'에서 작가와 문학 연구자, 일반 독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단편소설 5편을 놓고 투표하고 있다. /심훈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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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말고 문학상도 투표로 뽑을 수 있을까. 지난달 발표된 심훈문학대상은 국내 최초로 심사위원단 100명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5명의 평론가가 서로 "이 작품을 뽑아야 한다"며 토론까지 펼쳤다. 작가와 평론가, 일반인과 청소년 독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예심을 통과한 단편 5편을 읽고 한 표씩 행사했다. 투표 결과 37표를 얻은 김중혁의 단편 '휴가 중인 시체'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토론에 참가한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독자와 거리가 먼 작품을 뽑는 게 아닐까 걱정할 필요 없이 독자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그동안 문학상이 폐쇄적이고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문학을 사랑하는 보통의 독자들이 뽑는 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시인 오장환을 기리는 오장환문학상도 올해부터 본심 통과작을 놓고 소셜미디어에서 독자 투표를 진행한다. 여론 조작을 우려해 점수로 반영하진 않지만, 투표 결과를 참고해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올해 수상작인 육근상 시인의 '우술필담'에 대해선 "충청도 언어로 가득 찬 '우술필담'에는 능청과 해학이 있어 읽는 내내 즐겁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훨씬 두꺼워짐을 느낀다" 같은 독자 댓글이 달렸다. 심사위원회의 임우기 부위원장은 "문학상은 열린 잔치인데 주최하는 사람만 있고 손님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않으냐"면서 "독자 참여를 통해 한국 문학상에 대한 불신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

반면 민음사가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은 올해부터 온라인 투표를 접기로 했다. 2015년부터 "문학성과 상업성 모두를 갖춘 작품을 뽑겠다"는 취지로 독자 투표를 도입했지만 수준 높은 독자의 선택이 전문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심사 대상을 신인 작가의 첫 책으로 바꾸고 출판 관계자와 전문가를 설문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해외에선 일반 독자가 심사에 참여하는 문학상이 여럿 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스웨덴 '뉴 아카데미 문학상'은 전 세계 3만3000여 독자가 투표해 카리브해 여성 작가 마리즈 콩데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은 산티아고 순례길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직접 심사하는 문학상으로 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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