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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내 인생은 6회말… 남은 3회도 한국야구에 바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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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생 45년 자서전 낸 선동열

"엘리트 코스 밟아온 게 아니라 숱하게 좌절하고 극복했던 삶… 내년 초 뉴욕 양키스 연수 떠나"

야구인 선동열(56)이 자서전을 냈다. 책 제목은 '야구는 선동열'(민음인). 선수 30년, 감독 15년, 그리고 인간 선동열의 이야기를 397페이지 원고에 담았다. 그는 22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평생 몸으로 야구를 했는데, 그걸 글로 표현하려니 쉽지 않았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왜 썼을까. "흔히 '선동열'하면 평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전혀 아닙니다. 저도 힘들고 좌절했던 순간들이 많았고,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털어놓으면서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직구(直球)처럼 꾀부리지 않고 살았거든요." 화려했던 현역 시절, 감독 생활의 소회,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한 제언부터 지난해 아시안게임 이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던 일까지 두루 썼다.

조선일보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2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자서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9회 말 투 아웃 만루 풀카운트에 몰려도 직구를 던지는 삶을 야구인으로서 고수하겠다"고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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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일본 진출 첫해(1996년) 처절하게 망했던 시점부터 다룬다. 선 감독이 붙인 소제목은 '나는 국보가 아니다'. 그는 "국내에선 '국보 투수'로 대우받았는데 일본에서 2군도 아닌 3군 교육리그까지 내려갔다. 내가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였나 싶고 나 때문에 한국 야구가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며 "적어도 '노력 안 한다'고 욕먹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나고야의 태양' 수식어보다, 공식 훈련이 끝나면 유니폼 세탁소 주인과 캐치볼 연습을 따로 더 할 정도로 악착같이 연습했던 시절들이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현역 때 유행하던 포크볼을 던지고 싶어 손가락 사이를 찢어볼까 고민했던 사연도 공개했다. 포크볼은 쭉 뻗다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인데, 손가락을 넓게 벌려 공을 잡아야 구사할 수 있다. 선 감독의 손발은 유난히 작다. 그는 "손가락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제구력과 스피드에 큰 문제가 생긴다며 말렸다. 아직도 변화구 하나 더 만들지 못한 것에 미련이 있다"고 털어놨다.

야구라면 독하게 매달렸기에 작년 국정감사 증인 출석은 그의 야구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으로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선 감독은 금메달을 따고도 '선수 부정 선발' 논란에 휘말려 국감에 불려 나왔다. 그는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운찬 KBO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국감에서 발언했던 속기록을 자서전에 상세히 인용하는 것으로 마음고생을 드러냈다. 그는 국감 직후 감독직을 사퇴했다.

선 감독은 내년 초 뉴욕 양키스 연수를 떠난다. 한·일 야구 경험에 미국을 더해 한국 야구 선수층을 두껍게 하는 게 목표다. 그는 "지금 한국엔 중요한 국제 경기를 책임질 류현진 같은 투수가 없다"며 "어린 선수들은 진학에만 관심 있지 러닝 같은 기본기 훈련을 소홀히 한다. 한국 야구가 위기라는데 그럴수록 기본부터 다잡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인생을 야구로 치면 6회까지 치른 것 같다는 그는 "남은 3이닝은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진 야구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별빛을 뿜는 선수 뒤에는 어둠을 자처하는 가족이 있다. 그는 야구를 먼저 시작했지만 백혈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형, 부모님과 누나들, 아내, 아들과 딸에게 바치는 감사함과 그리움을 자서전에 녹였다. 특히 오는 일요일(27일) 결혼하는 딸을 위해 처음으로 편지를 써서 책을 마무리했다. "민정아, '선동열의 딸'로 살게 해서 미안했다. 앞으로는 아빠가 '홈'에서 너를 기다릴게."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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