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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안녕하지 못한 김지영, 이해와 연대가 필요하다(리뷰)[82년생 김지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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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분노와 비난보다 이해와 공감이 절실한 시대에 나타났다. 안녕하지 못한 김지영의 일상은 관객의 얼굴을 관통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바깥으로 보기에 평범한 삶을 사는 1982년 태어난 김지영이 일상 곳곳에서 차별과 편견에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1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단편영화 ‘자유연기’로 제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도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정유미가 김지영을, 공유가 지영의 남편 대현을 연기했다.

김지영의 일상은 겉으로 볼 때 지극히 평범하다. 당사자의 삶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 보면 육아 외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순탄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영이다. 그런데 사실 지영은 안녕하지 못하다. 안녕은커녕 일분일초가 멀다 하고 고개를 쳐드는 무기력과 우울감에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고, 이상증세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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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영의 이상증세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의 현재를 따라가던 영화는 무시로 과거를 제시한다. 지금은 딸 아영과 시댁 위주로 돌아가는 삶이지만 지영에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희망과 꿈으로 넘실거리던 시절 말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도 편견과 차별은 존재했다. 홍보팀 직원으로 근무하며 호랑이 같은 상사에게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꿈에 부풀었지만 으레 그렇듯 더 높은 위치로 가는 길목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유는 결혼과 육아였다.

영화는 조금 더 오래된 지영의 과거를 짚기도 한다. 늦은 퇴근길에 오른 사람과 학교, 학원 일과를 마친 학생들로 버스는 붐빈다. 지영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그 뒤로 또래 남학생 한 명이 서있다. 여성 승객은 지영의 불안정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지영은 승객에게서 휴대전화를 빌려 집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빨리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도망치듯 하차한 지영의 뒤로 남학생이 따라붙으며 왜 대꾸하지 않느냐고 윽박을 지른다. 지영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이때 승객이 급히 하차해 지영을 구한다. 한 발 늦게 현장을 본 지영의 아빠는 “학생이 치마가 왜 이렇게 짧니, 학원은 가까운 데 다니라고 했잖니”라며, 오히려 피해자인 지영을 다그친다.

분명 이 일은 어린 그에게 트라우마였을 테지만 지영은 나름대로 밝고 씩씩하게 잘 컸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현재의 지영에게 현실은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과 가정,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팽배한 성차별과 성희롱은 지영을 무너지게 만들고, 딸 아영을 데리고 들른 카페에서는 육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맘충’ 취급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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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영이 집에서 한 아이를 돌보는 삶 자체에 불만을 품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 지점을 잘못 읽으면 공감은 끊기고 결국 또 삿대질만 넘쳐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적어도 지영이 바라는 건 인간 김지영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더 늦기 전에 하고 싶다는 거다. 희망에 부풀었던 사회 초년생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못다 이룬 꿈 정도는 꿔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어머니는 “남편 앞길 막을 일 있느냐”고 윽박부터 지른다. 고지식한 윗세대라는 말로 나이브하게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지영의 시어머니 모습이 있고, 바로 그 모습이 차별과 편견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속 지영의 이야기는 한 개인보다 우리의 이야기에 가까우며, 피해의식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너무도 선명하다. 23일 개봉.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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