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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약속 지킨 기계, 돌아온 노병…그들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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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0대에도 여전히 액션 연기 선보이는 실베스터 스탤론(왼쪽)과 아널드 슈워제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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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근육질 몸의 액션 배우. 요즘은 워낙 익숙하지만 반세기 전만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주로 총을 쓰는 액션이라 근육보다는 날렵한 몸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상대를 통쾌하게 무찌르는 액션을 선보이며 액션영화 흐름을 바꾼 두 배우가 있다. ‘세기의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73)과 아널드 슈워제네거(72)다. 한 살 차이의 두 사람은 공교롭게 37세에 각각 <람보>(1983)와 <터미네이터>(1984)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노구라기엔 다소 무안한, 건장한 몸으로 약 35년간 이어진 자신들의 대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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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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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 중 조금 더 눈길이 가는 것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터미네이터6)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터미네이터6>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여섯번째 영화다. 사실 3~5편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은 3~5편과는 다르다. <터미네이터6>는 1·2편을 탄생시킨 할리우드의 거장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한, 28년 만에 그의 손때가 묻은 ‘터미네이터’다. 1·2편 주인공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와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함께 출연한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는 ‘완전체 터미네이터’라 할 수 있다.

이번 영화는 서사구조나 많은 장면에서 실제로 <터미네이터2>(1991)의 향기가 묻어난다. <터미네이터2>의 백미로 꼽히는 콘크리트 도로 추격 장면, 헬리콥터 액션 장면 등 <터미네이터6>에는 오마주를 넘어 자기복제에 가까운 다양한 장면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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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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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각 인물의 등장 장면에 매우 공을 들였다. 특히 사라 코너의 등장 장면은 ‘터미네이터’를 명작으로 만든 시대를 앞선 주인공에 대한 최고의 예우로 비춰진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여성주의나 성평등 의식, 시대를 반영한 <터미네이터2>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주요인물 모두가 여성이고, 기본값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주목한다. 검은 T-1000이라 할 수 있는 빌런 ‘Rev-9’와 후반부 비행기 속에서 펼쳐지는 공중액션 장면 등에서는 오마주를 넘어 한 단계 진화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영원한 터미네이터’ 슈워제네거 역시 인상적이다. 무게감 있거나 깊이 있는 연기는 아닐지라도, 이전 시리즈에서 보여주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이는 <데드풀>로 자신의 재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감독 팀 밀러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특히 세계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I’ll be back”을 완성하기 위해 시리즈 최고 흥행작인 <터미네이터2>에서 돌아온 T-800의 귀환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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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라스트 워>의 한 장면. TCO더콘텐츠온·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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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하는 <람보: 라스트 워>(람보5)는 ‘람보’ 시리즈의 다섯번째 영화다. ‘람보’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람보’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정도로 람보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람보4: 라스트 블러드> 이후 11년 만에 돌아온 <람보5>는 전장을 누비던 존 람보(실베스터 스탤론)가 고향에 정착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딸처럼 아끼던 이웃 소녀가 아버지를 찾으러 멕시코에 갔다가 매춘 조직에게 납치되고, 람보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짧은 줄거리만으로 짐작하듯 영화 결말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액션영화는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그럴싸하게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지에 성패가 달린다. <람보5>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람보의 쓸쓸함과 그럼에도 죽지 않은 람보만의 힘을 적절히 조화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람보’ 시리즈 특유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극대화한다. 한 마디로 슬래셔 버전의 <테이큰> <나홀로 집에>에 가깝다. 시리즈 팬의 입장에서는 활 쏘는 람보의 모습, 영화 말미 람보의 일생을 돌이켜보는 짤막한 쿠키 영상 등은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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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라스트 워>의 한 장면. TCO더콘텐츠온·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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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닮은 점도 꽤 많다. 두 영화 모두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텍사스·애리조나)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역은 트럼프 정부 들어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자주 쓰인다. 특히 다소 진보적인 영화인들은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영화에 녹이고 있다. 또 두 영화는 아동 학대나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엮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그린다는 점도 유사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 속 두 영웅 모두 웬만한 젊은 배우 못지않은 신체를 자랑한다. 다만 심리적인 면은 여타 외로운 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명은 전쟁의 상처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으며 혼자 살아가고, 다른 한 명은 가장 가까운 이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지 못한 채 언젠가는 찾아올 쓸쓸한 퇴장을 기다리며 산다. 두 영웅의 모습은 이번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 모른다. 람보는 절대 죽지 않고, 터미네이터는 시간여행을 하니까.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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