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은 사회 전반의 공정성 강화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 9월 초 대입제도 개선 전반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정시 확대를 콕 집어 거론함으로써 구체적인 지침까지 제시한 셈이 됐다. 그러나 정시 확대는 교육부가 그간 밝혀온 개편과는 방향성과 결이 전혀 다른 얘기다. 교육부는 '정시 확대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학종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가 대입 개편의 기조임을 분명히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히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은 청와대와 주무 부처 간 엇박자를 고스란히 드러낼 뿐 아니라 어렵게 일궈낸 사회적 합의도 빛이 바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낳는다. 지난해 국가교육회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해 오랜 공론화 작업을 거쳐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정시)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수능 전형을 30%로 높이는 내용의 대입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을 마련해 놓은 터였다.
수시모집을 선호하는 대학들이 내심 불만을 억누르면서 '정시 30%' 기준을 맞추려는 상황에서 정시 추가 확대 요구를 받는다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시·수시 비중은 대학뿐 아니라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돼 온 사안이다. 일부에서는 정시모집이 더 공정하다고 주장하지만,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공정성도, 객관적인 실력 평가도 담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예전의 '암기식 문제풀이'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또 정시 비중을 높이면 혜택은 강남 중심의 '상류층'에 돌아가며, 실제로 고소득층일수록 정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여러 통계나 논문을 통해 검증됐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진정한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입시 공정성이라는 미시적 문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대학·고교 서열화 해소 등 특권적 교육의 대물림을 구조적으로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문재인 정부는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내걸고 출범했다. 하지만 수능 절대평가는 사실상 무산됐고, 고교학점제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일정도 미뤄지는 등 공약이 잇따라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책이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도 안 되지만 상황에 따라 눈치를 살피며 조변석개하는 것도 금물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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