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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21년 만에 남북관계 옥동자에서 ‘격리병동’으로 내몰린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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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개시 이후 남북관계 '옥동자' '산소호흡기' 인식

김정은 관광 중단 11년만에 현장찾아 "격리병동처럼 돼 있다"

남북관계의 ‘옥동자’로 자리매김했던 금강산 관광이 ‘격리병동’으로 전락하며, 관광 시설들이 뜯겨나갈 위기에 몰렸다. 금강산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하면서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23일 김 위원장의 금강산 현지지도 소식을 전했다. 매체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온천장 등 남측(현대아산)이 건설한 시설을 둘러봤다. 그는 이 자리에서 “건축물들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벅 식”이라며 “건물들을 피해지역의 가설 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어앉혀 놓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며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동행한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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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의 중심인 온정각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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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특히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縮圖, 대상이나 그림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서 원형보다 작게 그림)처럼 돼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이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옥동자로 여겨졌던 금강산 관광의 의미를 인정치 않고, 자신들이 개발해 운영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 위원장은 금강산 인근에 공항을 건설하고, 관광지구와 연결하는 철도 건설 등 총개발계획을 작성해 시행토록 하라고 해 이미 내부적으로 개발 계획 검토를 마친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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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관광초기 숙소로 사용하던 해상호텔인 '해금강 호텔' 옆 부두에서 조용원(왼쪽)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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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합의해 1998년 11월 18일 시작한 금강산 관광은 그동안 남북관계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꼽혔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지역을 50년간 임차하고, 9억 4200만 달러를 북측에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당초 매달 일정 금액을 북측에 제공키로 했으나 사업권자인 현대아산이 경영난에 봉착하자, 육로관광 실시 1인당 50~100달러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합의 내용을 바꾸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가 냉각기에 접어 들었을 땐 ‘산소호흡기’라는 인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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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8일 금강산관광객을 태운 금강호가 첫 출항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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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서해에서 남북한 해군 간 전투가 벌어졌던 서해교전(제2연평해전이) 발생한 상황에서 동해에서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금강산 지역으로 출항한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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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관광 시작부터 철거 지시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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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이 쏜 소총에 희생된 뒤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북한이 금강산 관광 지구 안의 남측 시설물을 몰수하며 의미가 퇴색돼 갔다. 이어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하면서 금강산관광 재개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다. 정부 당국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관광은 제외돼 있지만, 북한과 경제협력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북한과 협력사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의 틀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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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이 철거 지시한 금강산 남측 시설 13곳.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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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김 위원장은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해 들어내도록 하라"고 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중단돼 있는 남북간 협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이를 계기로 중단된 남북대화의 재개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그리고 남북합의의 정신, 또 금강산 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협의'가 아닌 '합의'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김 위원장의 지시가 공개적으로 이뤄진 만큼 '조건없는 재개'(김 위원장 신년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옥동자'의 사형선고는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많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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