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화 부원장 |
일곱 살 예쁜 딸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였다. 첫아이 때는 문제 없이 임신이 되고 임신 중에도 아이가 잘 자라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첫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기대하지 않게 아이가 생겨 기뻐할 찰나 임신 초기부터 출혈이 잦고 병원에서는 아이가 조금 작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유산됐다. 당시에는 나이 때문에 우연히 그럴 수 있다는 설명과 엽산을 잘 챙겨 먹으라는 권유를 받고 다음 임신을 준비했다. 하지만 연달아 임신·유산을 반복하고 세 번째 유산이 됐을 때 비로소 ‘습관성 유산’에 대한 검사를 했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이제 임신이 두렵기까지 한데 아이에 대한 욕심은 더 커진다며 눈물을 보였던 이였다.
이전에 한 검사를 보니 호르몬이나 자가항체, 여러 면역 검사에 이상은 없었고 자궁 기형도 아니었다. 근데 염색체 검사는 하지 않았다. 부부도 건강하고 첫아이도 아픈 데가 없으므로 염색체는 문제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염색체 전좌’의 경우, 두 개의 서로 다른 염색체 일부가 자리가 바뀐 상태로 유전자 정보의 총량에는 문제가 없어 부부나 첫아이는 건강상 전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난자나 정자가 만들어질 때는 한쪽으로 유전자 일부가 치우쳐 비정상 배아를 만들 확률이 커지고, 이런 경우 유산율이 80%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부부의 염색체 검사를 하고 나니 여성 쪽에 염색체 전좌가 확인됐다. 이제는 자연임신이 아닌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시도를 하고 착상 전 유전자 진단 검사를 시행해 염색체의 이상이 없는 배아만을 골라 이식하는 방법을 권유했다. 자연임신보다 힘든 과정임에도 꿋꿋하게 시술받았고 임신이 됐다. 양수 검사에서 아이의 염색체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훨씬 편안한 모습으로 열 달을 채운 뒤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병원에 다니는 내내 부부는 함께였다. 항상 아내의 옆자리를 지켜주며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아내를 안심시켜 주는 역할을 남편은 아주 잘해주었다.
건강하게 임신·출산하고 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은 더는 엄마만의 역할이 아니다. 부부가 함께 노력해 좋은 부모가 되고 사회가 함께 키워 나가야 한다. 난임도 그렇지만 반복유산은 더욱 원인을 찾는 검사부터 시작해 적절한 치료와 주변 가족의 심리적 지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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