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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50원이 부른 칠레 APEC 취소, 미·중 무역합의도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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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지하철요금 인상이 도화선

반정부 시위로 비상사태 선포

초유의 APEC 회의 무산 불러

미·중, 협상서명 위해 대체지 물색

내달 산티아고 기후회의도 영향

중앙일보

칠레 산티아고에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물대포 차량을 공격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개최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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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17일 세계 주요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가운데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 17일을 앞두고 전격 취소됐다. 참가국들이 추진했던 다자 외교, 양자 외교 일정이 꼬이게 되면서 국제 외교가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31일(현지시간) “APEC 정상회의 사무국 측이 다른 장소에서는 행사를 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간 30차례 열린 APEC 회의가 열리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정상급 다자회의가 개최지의 국내 소요사태로 취소된 것도 이례적이다. 칠레는 지난 6일 지하철요금 30칠레페소(약 50원) 인상 조치로 촉발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로 18명이 사망했고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됐다.

“무역전쟁 불확실성 더 오래 갈 수도”

중앙일보

지난달 30일 APEC 정상회의 취소를 발표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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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PEC 정상회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미·중 정상이 1단계 무역협상안에 서명할 것인지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중국과 (무역)협상에 서명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1단계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매우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산티아고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1단계 합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날 뉴욕 증시도 급등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흘 만에 칠레가 APEC 회담을 취소하면서 백악관도 곤란해졌다. 호건 기들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우리는 같은 시간대에 중국과의 역사적인 1단계 합의를 마무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예정대로 미·중 무역 합의안 서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장소를 다시 구하는 게 관건이다. 로이터통신은 미·중 무역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하와이나 알래스카를 잠재적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중국 측은 마카오를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중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경제협력연구원의 메이신위 연구원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지난달 29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합의문의 기술적 협의가 기본적으로 완성됐다”며 “회담이 제3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PEC 취소로 양국 협의안 서명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CNBC 방송은 “칠레의 APEC 개최 포기로 미·중 정상이 1단계 무역합의를 언제 서명할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APEC 취소로 양국이 시간을 번 만큼 구체적 사안도 더 밀도있게 들여다볼 것이란 점에서다.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르텐 슬로크는 블룸버그통신에 “(서명 연기는)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2단계 또는 3단계 합의’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파는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에도 예상치 못했던 지장을 주고 있다. 칠레는 APEC에 이어 12월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개최도 취소했다. 탄소 배출량의 급속한 증가를 막을 수 있는 각국의 추가 대응책 마련이 주요 의제였다. 파트리샤 에스피노사 유엔 기후변화협약총회 의장은 이날 성명에서 “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열 장소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AP는 유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뉴욕과 빈, 제네바 등이 대체 장소로 고려되고 있다고 전했다.

APEC 취소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일정도 헝클어졌다. 문 대통령에게 11월은 ‘외교의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5일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 13~19일 APEC 정상회의와 한·멕시코 정상회담,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문 대통령 멕시코 방문도 영향 받나

특히 APEC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다자 외교의 장으로, 문 대통령은 교착상태에 처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활로를 모색할 기회로 여겨 왔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 회담 가능성도 더욱 줄어든 셈이다. 정부는 APEC 기간 일본의 수출규제 및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으로 최악의 상태인 한·일 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양국 정상회담을 물밑 타진해 왔다. 결국 칠레 정부가 APEC 개최 포기를 택하면서 칠레 방문은 ‘없던 일’이 됐고, 청와대로선 ‘플랜B’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APEC을 계기로 남미 방문길에 잡아 놓은 멕시코와의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을 공식 발표한 상황에서 번복하는 게 쉽지 않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APEC 취소와 관련해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멕시코 정상회담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청와대 기류다. 멕시코와의 정상회담만을 위해 남미까지 가는 것은 실익이 크지 않고, 추가로 다른 나라와의 정상회담을 조율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박성훈·권호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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