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집으로>
감독 이정향(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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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향 감독의 첫 장편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은 해마다 쌀쌀한 계절이면 간절해지는 따끈한 손난로 같은 영화다. 두 남녀의 성격 차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과 연결해 풀어낸 이 작품은 따뜻하고 서정적일 뿐 아니라 유머와 재치까지 살아있어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모두 끌어냈다. 1999년 각종 영화상 신인감독상을 휩쓴 이정향 감독은 차기작으로 스타 한명 등장하지 않고, 시골을 배경으로 한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 <집으로>(2002)를 선택한다. 화려하게 데뷔했다고 해도 전형적인 상업영화였던 전작과 먼 지점에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지간한 자신감과 뚝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찌는 듯한 여름, 7살짜리 도시 아이 상우(유승호)는 난생처음 만나는 할머니(김을분)와 단둘이 시골살이를 시작한다. 할머니가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다는 설정은 상우와 소통 가능성이 거의 차단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 상우의 철없는 요구가 번번이 할머니의 경제력과 경험치를 넘어서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듯하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엄마도 없이 낯섦과 외로움, 불편과 싸워야 하는 상우는 화풀이하듯 할머니를 괴롭힌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개구쟁이의 장난과 실수를 한없는 사랑으로 받아준다. 상우도 그런 할머니에게 조금씩 애착을 느끼며 달라진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과정이 때로 애틋하고 때로 시큰하게 묘사되는 사이, ‘가족’의 의미가 사전의 뜻풀이처럼 선명해진다. 하나의 큰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공감의 축대를 세우는 스토리텔링이 고요하고 한적한 산골 마을의 정취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집으로>는 당시 서울에서만 15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작의 흥행 성적을 크게 뛰어넘었고, 지난 9월 재개봉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를 향한 헌사는 아직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윤성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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