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설치 미술가 사라세노 개인전 / 무당거미 2∼3마리가 만들어낸 거미줄 / 방사형 모습으로 독특한 아름다움 뽐내 / 거미줄 매개로 인간·세상의 공존 표현 / 사람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각성 통해 / 환경 파괴·기후변화 문제 심각성 조명
토마스 사라세노가 거미와 협력해 만들어낸 거미집. 갤러리현대 제공 |
개막일에 맞춰 내한한 작가는 “몇 분간이라도 휴대전화 불빛을 끄고 어둠에 익숙해져 보라”고 당부했다. 그는 “기대한 것과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며 “숨소리와 먼지 움직임에 집중하면 인간뿐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공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여러 생태계가 파괴되고 멸종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먼지는 생명의 초기 단계입니다. 먼지가 우리의 움직임이나 숨(호흡)에 따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사라세노는 거미와 함께 거미집을 만드는 ‘스파이더+맨’ 설치 미술가로 유명하다. 작가에게 거미는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하거나 작업에 활용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오랜 ‘협력자’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우주적 풍경. 어둡게 조성된 내부의 작품은 광활한 우주의 행성들처럼 서로 다른 높이로 전시장을 떠다닌다. 갤러리현대 제공 |
사라세노의 작품 세계 핵심 키워드는 ‘공생’. 그는 오늘의 환경과 기후 문제를 고민하며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거미망의 추상적인 3차원 구조를 우주, 생존, 공존이라는 주제와 연결해 지속해서 연구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아라크노필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수많은 거미, 거미망 유형을 보관하고 디지털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거미줄을 보면서 우리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살고 있음을 느꼈다”며 “나보다 훨씬 지구에서 오래 산 거미가 나와 협업하며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은 사라세노의 건축적 실체를 경험하는 장이기도 하다. 건축학도였던 그는 20세기 건축의 경계를 허문 위대한 실험자의 계보를 자신의 작품에 빠르게 흡수시켰다.
‘하늘에 떠다니는 주거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국가의 경계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난 초국가적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은 스파이더맨이 쏘아올린 듯한 공중 도시 풍경을 선사한다. 전시장 벽면 하단에는 남산타워, 롯데타워 등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이어지고, 그 위로 작가가 꿈꾸는 ‘구름 도시’의 이미지가 보인다. 전시장 중앙 공간에는 구름 모양을 차용한 구조물이 매달려 있다. 새롭고 대안적인 형태의 도시성과 부유하는 거주지를 꿈꾸는 작가의 도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아라크네, 우주진, 숨 쉬는 앙상블과 함께 하는 아라크노 콘서트’. 칠흑처럼 어두운 전시장에 빛이 우주의 기원인 먼지 입자들과 거미줄을 비추고 있다. 전시장 상단의 카메라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며, 조명 하단의 스피커는 이를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음색으로 변형한다. 갤러리현대 제공 |
이밖에 우주적 풍경 속에서 작가를 대표하는 ‘에어로센’을 보는 작품도 있다. 에어로센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풍선 내외부 온도 차, 공기와 태양열, 바람으로 공중에 부양하는 장치다.
건축, 환경, 천체, 물리, 생명과학 등을 가로지르는 그의 작업세계는 미래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인다. 사라세노는 ‘인류세’ 이후 예술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는 다음달 8일까지.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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