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영화 리뷰] 14일 개봉 영화 `심판`, 테러범 보호하는 독일 법정, 이 모순의 피해자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철학의 나라 독일엔 구조적으로 꽉 짜인 영화가 많다. '타인의 삶' '굿바이 레닌' '롤라 런' 등 이 나라 대표 영화들은 "1막에서 권총이 나왔다면 3막에선 쏴야 한다"는 러시아 문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말에 충실하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심판'도 마찬가지다. 각 장면과 대사는 어느 하나 소모적으로 쓰인 게 없어 서로 연결할수록 깊은 의미가 발견된다.

이야기는 상냥한 이웃 카티아에게서 시작된다. 값나가 보이는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둔 젊은 여인에게 그는 "자물쇠를 걸어두라"고 조언해준다. 그 자전거가 사실은 사제 폭탄이라 자신의 남편과 아들을 죽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친절의 대가로 테러가 돌아왔다. 이후에도 지독한 모순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카티아는 범인을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들은 쿠르드족 출신 남편과 그 피가 섞인 아들을 항상 표적으로 삼아왔던 네오나치 부부였다. 하지만 현대 성문법 근간을 마련한 합리적 독일 법정에서 재판받게 된 것이 과연 행복하기만 한 일일까. 영화 속 판사들은 피해자만큼 피고의 권리도 철저히 보호한다. 원고의 분한 마음을 알면서도 피고인을 배려해야만 하는 재판관 표정과, 그런 법관을 바라보는 카티아 얼굴이 대조된다.

이성에 의해 질식할 듯한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카티아의 슬픔과 분노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카티아는 대형 참사 유족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착한 피해자' 이미지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이다. 그는 재판소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걸 알면서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욕하고, 때로는 마약 같은 불법적인 수단에 기댄다. 주연 디아네 크루거는 감정을 영하의 온도로 유지하다가 순식간에 터뜨리는 다이나마이트 같은 연기력을 선보인다. 이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작품은 이 밖에도 서사, 미술, 음악 등에 여러 대립 구도를 심어 관객을 사유하게 한다. 그중 가장 주목해볼 만한 건 죄책감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 대립항이다. 테러범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 여행을 다니지만 카티아는 죄책감으로 자해하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일부는 자신이 한 번도 남편과 아들 입장에서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모국에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독일인으로서' 자주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민자 남편, 혼혈인 아들과 본토 독일인 카티아 사이에는 어떤 경계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폭발 사고 후 카티아가 꾸는 꿈은 그런 죄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언젠가 해변에 놀러갔을 때 부자가 그에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오라고 권했지만 "엄마 방금 선크림 발랐어"라며 한 차례 거절했다.

이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오는 건 아마도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부자의 상황에 즉각 들어가지 못했을까.'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그 시간과 해변, 남편과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수자 혐오 범죄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다수자' 유가족은 어떻게 가족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감옥으로 보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심판해서? 영화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심판'으로 제75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독일인 파티 아킨 감독의 부모가 이민자 출신이다. 독일 네오나치 집단 NSU 멤버 3인이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저지른 테러 사건 10건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카티아가 눈물 흘리게 하되 한 발짝 떨어져 봄으로써 개인의 슬픔과 공동체 문제를 동시에 지적한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15세 관람가.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