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온양민속박물관
계절을 품은 야외 전시장은 깊은 가을에 빠져들 수 있고, 이타미 준이 국내에서 처음 설계한 건축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각종 탈춤에 쓰이는 탈들 [사진/조보희 기자] |
충남 아산시의 한가운데, 시청 인근에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은 지난해 설립 40주년을 맞은 사립박물관이다. 대지가 6만㎡가 넘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소장 유물은 2만2천여점, 야외에 전시된 것들까지 합치면 3만 점에 이른다.
비수도권에서, 사립 박물관으로서는 독보적인 규모다. 이 박물관의 설립자는 아동 도서 전문 출판사 계몽사의 창업주인 구정(龜亭) 김원대(1921∼2000) 선생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급격히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값비싼 골동품을 모으는 대신, 전국 각지에 전문가들을 보내 서민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위주로 온갖 유물들을 그러모았다.
당시 유물 수집 기록 노트에는 '뒤웅박 6천원', '똥바가지 1만800원' 등,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를 주고 샀는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물관이 연고가 전혀 없는 아산에 자리를 잡은 것도 아동 서적을 팔아 부를 일구었으니 전국의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설립자의 뜻이었다 한다.
온갖 문화 시설이 모인 서울이 아니면서 중간 지점인 충청도에,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가 지척이니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함께 들르기 좋다는 것이다.
실제 개관 직후에는 한 해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박물관을 찾아 한없이 줄을 설 정도였다 한다.
아산의 흙으로 구운 벽돌로 마감한 본관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
◇ 도시 한복판의 고즈넉한 동산
학생 수도 줄고, 수학여행지로서 현충사의 인기도 그 시절 같지 않은 요즘, 평일 오후의 박물관은 도시 한복판에서 찾은 고즈넉한 동산 같았다.
박물관 정문인 설화문(雪華門)을 지나 작은 숲을 산책하듯 휘어진 언덕길을 오르면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로 마감한 2층짜리 본관 건물이 나온다.
박물관 입구 외벽에는 백성 민(民) 자가 좌우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의 로고가 눈길을 끈다.
건물 외벽과 로비의 벽을 장식한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이 모두 아산 땅의 흙으로 하나하나 직접 구운 벽돌이라 같은 색이 없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
1층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왼편의 1전시실로 들어가면 한국인의 의식주와 생활 문화, 관혼상제를 통해 '한국인의 삶'을 일별하게 된다.
1전시실 출구를 나오면 자연스레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오고, 복도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궤가 자연스레 놓여 있다.
2전시실 '한국인의 일터'에는 산과 밭, 강과 바다에서 쓰던 온갖 기구들을 모아 놨고, 3전시실은 각종 공예, 민속 신앙과 놀이, 학술 등 '한국 문화와 제도'로 생활의 반경을 넓힌다.
바다 고기잡이에 쓰는 어구들 [사진/조보희 기자] |
전시마다 적절하게 함께 보여주는 '농가월령가', '조침문', '규중칠우쟁론기', '청구영언' 등 교과서에서 봤을 땐 구닥다리만 같던 옛글들이 눈앞에서 그에 꼭 맞는 유물을 만나니 새삼스레 생생하고 흥미로웠다.
각 전시실을 돌아보는 동선과 전시 공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다른 박물관과는 뭔가 다르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 기획 의도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모은 유물을 분류해 전시 순서까지 정해진 뒤 그에 꼭 맞춰 지어진 건물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정된 예산을 아끼기 위해 전시에 가장 효율적인 공간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찬방과 부엌, 안방과 마루, 사랑방과 대청이 이어지는 한옥도, 실제 고기잡이를 하던 배도, 높이가 2.7m가 넘는 나락 뒤주도 맞춤하게 자리 잡았다.
어구의 긴 밧줄과 어망도 공중에 길게 이어 바다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제기차기나 팽이를 돌리는 아이 인형과 연, 자료 사진은 아주 짙은 분홍색을 배경으로 전시돼 있었다.
팽이, 연, 제기 등 놀이기구 [사진/조보희 기자] |
전시마다 배경색이 흰색, 베이지색, 회색에서 벗어나 노란색, 푸른색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를 준 것 역시 흥미를 돋우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았다. 3개의 상설 전시관에는 전체 소장 유물 중 6천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주제와 순서 등은 유지한 채 전시품이 바뀐다.
본관을 나오면 드넓은 정원 곳곳에도 유물인 듯 아닌 듯 전시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표정의 문인석과 무관석, 동자석과 석조여래입상부터 고인돌과 장승, 연자방아와 디딜방아, 기름틀까지 만난다.
강원도 삼척에서 옮겨온 너와집은 산간 지방 특유의 겹집 구조인 데다 규모가 꽤 커서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연못가의 정자나 반원형으로 나무 벤치가 놓인 아담한 야외무대에 앉아 한숨을 돌리면 그대로 가을 풍경 안에 폭 잠길 수 있다.
이타미 준의 한국 첫 작품인 구정아트센터 외관 [사진/조보희 기자] |
◇ 이타미 준이 한국 땅에 세운 첫 작품
산책길의 끝에는 단정한 기와 위로 거북이 등 모양의 지붕을 인 독특한 건물을 만난다.
제주의 포도호텔(2001)과 수풍석 박물관(2006), 노아의 방주를 닮은 하늘의 교회(2009)로 유명한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 한국명 유동룡)이 한국에서 처음 지은 것이 바로 이 구정미술관(1982)이다.
온양민속박물관 개관 4년 뒤 같은 부지에 민화 전시를 위한 미술관을 추가로 설립할 때 박물관 설립자의 아들이자 1대 관장을 지낸 김홍식 선생과 일본 유학 시절 맺은 인연으로 이타미 준이 설계에 나섰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숨졌지만 내내 한국 국적을 고수했던 그의 건축물에는 한국성, 지역의 자연이 담긴다.
온양미술관은 인근 현충사에 모신 영웅 이순신을 기리며 거북선 모양으로 지붕을 올리고, 내부는 충청도의 'ㅁ'자형 가옥 구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지역의 황토와 돌을 가져다 벽돌을 굽고, 담을 쌓아 올렸다.
2014년 구정아트센터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서 현재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여름 이타미 준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가 개봉한 이후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라며 찾는 사람이 꽤 늘었다고 한다.
구정아트센터의 거북선 모양 지붕을 내부에서 올려다본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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