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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매경춘추] 대학 DNA를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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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학에 부임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나라 전체가 혼돈스럽고 난망한 시기여서 대학에도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웠던 시기조차도 대학이 요즘처럼 맥이 빠져 있고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대학 캠퍼스, 시설이나 시스템은 상전벽해로 바뀌었다. 디지털 전환의 선봉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수강 신청과 출석 체크는 자동화됐고, 첨단 교육 방법과 콘텐츠를 활용한 교육 선진화가 이뤄진 지 이미 오래다. 대부분 학생들이 노력만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콩나물시루 같은 대형 강의는 옛말이 될 정도로 교수 대 학생 비율은 낮아졌다. 이런 캠퍼스의 발전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진정한 DNA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대학에 생동감이 없어졌다. 어려운 시절에도 대학가에 통기타 소리와 노래, 춤이 넘쳐흘렀던 낭만적 모습이 그립다. 개강 파티, 축제 및 졸업여행은 명맥만 잇고 있고 스승의 날 행사와 사은회는 대부분 없어진 지 오래다. 캠퍼스가 각박해졌고 무관계가 일상화됐으며 홀로 살기가 보편화됐다. 취업이 지고선이 돼 강의, 지도, 동아리, 교외활동 등 모든 대학 교육 과정과 대학 생활이 취업에 정조준돼 있고, 대학의 명성을 취업률로 가늠하게 됐다. 대학들은 상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오랫동안 등록금이 동결돼 교직원 임금 인상은 차치하고라도 교육과 연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실험 실습과 학생지도 등에 소요되는 예산도 감축돼 왔다. 대부분 대학들이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신규 수익원을 찾든지 더욱 쥐어짜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

이런 극도의 피폐된 상황에서 학생 간, 사제 간 관계는 공식화되고 형식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무망하다는 것이다. 저성장 기조, 저출산, 사회적 침체 등이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학생들은 사회 진출을 늦추며 안정성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불을 밝히고 있지만, 오대양 육대주를 웅비하고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하여 성장시키겠다는 도전과 패기는 찾기 어려워졌다.

훈훈한 정과 낭만이 넘치고 도전 및 희망이 충만한 대학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인 특유의 정(情)과 신바람, 돈독한 인간관계가 충일한 상아탑이 돼야 세계를 주름잡고 미래를 책임질 한국형 글로벌 인재가 배출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대학이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기 바란다.

[홍성태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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