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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세형 칼럼] 이튼스쿨 579년, 교육은 공정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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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가 명문고를 폐지하고 고교평준화를 단행한 게 1974년이다.

그러나 평준화를 해보니 수월성 없는 교육 황폐화 폐단이 더 크다는 결론으로 10년 후인 1984년 외국어고를 허용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자사고를 여럿 설치했다. 일본도 고교평준화를 단행했다가 한국, 중국보다 국제 학업 성적 비교에서 뒤떨어지자 '큰일 났다'며 사립고를 대거 인가했다.

교육은 사회적 계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기회의 사다리이자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엄중한 사명을 지닌다. 영국의 이튼(Eton)스쿨은 579년 전, 우리로 치면 조선조 세종 때(1440년) 세운 명문으로서 존슨 현총리 등 총리만 20명을 배출했다고 폐지론을 떠드는 사람은 없다. 미국의 명문 보딩스쿨 앤도버(Andover)는 1776년 독립 2년 후 설립됐으니 사실상 미국 역사와 같다. 그로튼, 앤도버, 필립스엑시터 순으로 300여 개 사립학교 서열이 인터넷에 쫘악 뜨는데 학비는 연간 5만달러(약 5800만원) 수준이며 이는 영국의 명문 사립들과 비슷한 금액이다. 한국 대원외고 등의 1100만원 선과 비교해보시라.

프랑스 얘기까지만 더 하기로 하자. 프랑스는 68년 학생혁명의 발원지이며 일찍이 교육평준화를 선언했다. 고교는 공립은 무료이고 일반대학도 무료다. 그런데 그랑제콜이라는 명문대에 가려면 비싼 사립고를 가야 한다. 프랑스 언론은 명문대를 보낸 사립학교 순위를 1등부터 100등까지 발표한다. 명문 학교는 국가의 리더를 길러내고 기술 인재를 배양하는 곳으로 여겨 국민 정서에 질투심은 없다고 한다.

중세 대항해시대 이후 어차피 인간을 움직이는 원리는 인센티브였다. 그 원리가 신대륙을 탐험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지금 이 순간도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문명의 발전은 창조적 소수가 이끌어가고 그 한가운데 인재가 있다. 그들은 고소득자이고 명예가 따른다. 유은혜 장관은 특목고가 4%밖에 안 되지만 입시 전문으로 전락해 명문대 입시를 독차지한다는 논리를 폐교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튼과 웨스트민스터 두 고교 졸업생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입학의 50%를 점유한다고 한다. 미국, 프랑스의 상위권 보딩스쿨들도 '서열! 서열!'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공정'을 몰라서 이튼, 앤도버, 그랑제콜을 운영하겠는가. 역사는 두 번의 칙령에서 인재 문제를 소홀히 다룰 때 어떤 재앙이 닥쳤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알람브라 칙령(1492년)으로 두뇌가 뛰어난 유대인 17만명을 쫓아내 1등국 지위를 영원히 잃었고, 프랑스는 낭트 칙령 폐지(1685년)로 유능한 기술을 가진 위그노 20만명이 스위스 등 이웃 국가로 도피한 후 산업혁명에서 영국과의 경쟁에서 패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이 공정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현시점은 중국 같은 나라가 단번에 세계 2위로 부상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인재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제 인재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사퇴에 몰려 느닷없이 '공정' 슬로건을 들고나온 게 10월 15일이다. 그리고 교육장관회의 한 번 하고 번개작전 하듯이 정확히 3주 만에 외고를 폐지하는 것을 보고 세계가 웃을 것이다. 고교서열화와 부모 능력으로 대학에 가는 것처럼 질투심을 부추겨 공정을 가장하는 것은 문정부의 어두운 페르소나다.

가난한 학생 대입 선발 비율을 늘리도록 선발권을 대학에 주고 장학생을 늘리면 단번에 해결된다. 수월성 선택이 없으면 망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300년, 500년을 명문 학교를 통해 엘리트를 길러내는데, 한국이 외고 30년 운용해보고 폐지하는 것은 자해 행위다. 총선에서 공정쇼(show)로 이득을 보려는, 탈원전보다 국운을 더 위태롭게 하는 마녀사냥이다.

다음엔 서울대, 삼성을 평준화하자고 할 차례일까.

[김세형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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