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시론] 비판적 유럽 진보, 수구적 한국 진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과거 진보는 자기 희생 있었는데

지금의 진보는 이해득실만 따져

중앙일보

정상돈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초빙교수


노동자의 아픔과 슬픔을 그려낸 진보 진영 S 시인의 글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곤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그 아픔과 슬픔이 결국엔 각종 이슈마다 “단 한 번도 민중 무력 없이 세상이 바뀐 적은 없다”는 투쟁 선동의 언어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묻고 싶다. 10여 년 전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에 대해 “동북아 전쟁기지”라면서 “대추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다국적 전쟁 기계들에 내줄 수 없다”며 죽봉을 들던 그 시인이 그로부터 10여년 후 북한이 핵무기로 안보를 위협하는 지금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본의 역사는 탐욕의 역사이고 노동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라는 진보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싸워야 할 것과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못 하는 한국적 진보의 한계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분단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국익을 위한 원칙과 실용의 외교·안보 정책이 요구된다. 북한에 대한 한국 진보의 인식도 남·남 갈등의 원인이 되고 남북 관계에 영향을 주는 만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유럽에선 1968년 학생운동으로 신좌파(New Left)가 태동하고 진보의 혁신이 시작됐다. 그 밑바닥엔 비판 정신이 흐른다. 소련식 사회주의도 노동의 해방을 구조적으로 억압한다며 비판하고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럽 좌파는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지 않는다. 수령을 신격화하는 유일 지배 체제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북한은 자본주의보다 먼저 극복돼야 할 체제다.

북한은 거대한 감옥이다.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발각되면 공개 처형당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국 진보는 유독 북한 인권 상황에 침묵한다. 옛 서독은 통일 전 동독 인권 상황에 침묵하지 않았다. 한국 진보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권은 진보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도 인권을 무시하는 남북 관계 개선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북한의 온갖 비정상적 행태를 용인·묵인하면서 그들이 정상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원한다면 남북 간에 이뤄지는 일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진보는 북한의 모욕과 위협에는 침묵하고 북한을 변호·대변해주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럽 진보처럼 북한을 비판하면 냉전 수구 보수로 몰린다. 실패한 사회주의 모델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는 비판 정신으로 자기 성찰과 혁신을 추구하는 유럽 진보 시각에선 상상할 수 없는 시대착오다. 한국적 진보의 후진적이고 수구적 행태다.

한국 정치 발전 차원에서도 진보는 진정한 사회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 가르기 싸움을 하면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적폐로 모는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의와 진리를 독점하면서 지지자 이외의 국민과는 소통의 문을 닫는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념 문제로 탄압받던 한국 진보가 이념 갈등 해소를 위해서 그동안 뭔가 역할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퇴행적 한국 진보의 학습능력 상실을 의미한다.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시절 진보엔 자기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조국 사태’에선 적과 동지만 있고, “우리(진보)만 살면 된다”는 계산만 보인다. 이것이 단기적으론 득이 될지 몰라도 결국 제 살 깎아 먹는 행위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한국 진보는 정말 진보적이냐고.

정상돈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