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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우보세]부동산 시장의 역린 '강남 8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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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지금 정책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지방에서 혼자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간 학력고사 세대가 많아요. 그래서 강남 8학군이 부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지금은 혼자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한 시대잖아요”(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대학 입학을 위해 학력고사를 치렀다. 이때도 강남 8학군은 존재했지만, 지금과 달리 100% 정시로 합격생을 뽑는 학력고사 세대에서는 ‘대역전’이 가능했다. 지방에서 학력고사를 몇 개월 남기고 '수학의정석' 등을 파고 또 파서 명문대에 들어가는 신화가 낯설지 않다. 그래서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자사고와 특목고를 없애면 공정한 입시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당국의 생각인 것 같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강남 8학군의 부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분양가 상한제보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2025년 일반고 전환이 더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강남 8학군은 서울내 11개 학군 중 강남구와 서초구가 포함된 8학군을 가리킨다. 애초 8학군을 명문 학군으로 만든 건 정부였다.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박정희 정부는 강남으로의 인구 분산을 위해 경기고 등 강북 명문 학교 이전을 단행했다.

교육열이 높은 고학력 중산층들이 강남으로 대거 유입됐고 자연스레 강남 학교들의 명성도 높아졌다. 고교평준화로 강남 8학군의 위상은 더 굳건해졌다. 한 학교에서 수십명씩 서울대 등 명문대에 진학하자 위장전입, 부동산 가격 상승 등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 8학군을 가라앉히는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자사고와 특목고다. 이들 학교는 강남이 아닌 지역에 많다. 자사고 1위인 하나고가 은평구에 있는 것을 비롯해 지방 명문고도 많다.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나 자사고 폐지 논란의 중심이 된 전북 전주 상산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학교들이 앞으로 모두 없어진다고 한다. 강남 아파트 '3.3㎡당 1억원'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교육도 '부의 대물림'이 있어야 가능한 날이 올지 모른다. 다양성 시대에 특출난 학생들이 차별화 없이 하향조정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아쉽다.

학창 시절 8학군의 폐해를 절감했다는 한 40대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할아버지를 내놓아도 자식 좋은 학교 보내겠다는 부모 마음은 못 이긴다”며 “부동산은 항상 교육 문제와 함께 봐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아들을 위해 배신자의 오명을 쓴 채 어두운 탄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한국 부모들은 이보다 더 큰 고난도 이겨낼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섣부른 교육 정책이 '8학군 부활'이라는 부동산 시장의 역린(逆鱗: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린 게 아닌지 우려된다.

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oop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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