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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천사들의 도시'에서 존엄을 침해당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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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김기창│344쪽│민음사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4년 전 한국에 온 베트남 노동자 훙은 장갑차와 탱크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던 훙은 사고로 손가락 세 개를 다치고, 회사에서는 그를 해고한다.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한 그의 마음에는 복수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사장의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 위한 계획을 도모한다.

책은 한국의 공장주로부터 존엄을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베트남 국적의 불법체류자 훙의 복수에서 촉발한 비극의 연쇄를 다룬다. 2014년 고독사를 파고든 장편소설 ‘모나코’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저자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공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모나코’에 비해 한층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 ‘방콕’을 그린다.

방콕은 ‘천사들의 도시’란 뜻을 가졌지만, 소설 속 방콕은 생명과 권리도 거래가 가능한 곳이다. 복수에 성공한 훙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나 방콕을 택한다. 방콕은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뒤섞여 녹아 흐르는 거대한 용광로다. 쾌락을 충족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은퇴이민을 온 백인 남성,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온 베트남 여성까지. 저자는 이들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존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하나의 생명체에게 지옥인 곳이 다른 생명체에게 천국일 수는 없어.”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도 완전한 악당은 아니지만 고통의 연쇄작용에서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누아르적 세계관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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