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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치가 미치는 거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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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입동 전 담그는 김장, 익으려고 몸부림치다 신기하게 맛있어지는 김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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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김장’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저희 집에서는 입동 전인 11월 초에 김장을 해요. 올해에는 11월 첫째 주말에 김장을 했어요. 40년 전 시집올 때는 배추 200포기를 담갔다면 이제는 줄어 80포기 정도 담급니다. 아랫동서네도 함께 하다가 ‘김장 분가’를 시켰더니 김장양이 줄었네요. 그래도 김장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에요.

김장하기 전에 준비할 게 많아요. 제일 먼저 밭에서 김장용 배추를 뽑아요. 배추농사를 짓고 있어서 매년 제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합니다. 올해 배추농사가 잘 안됐어요. 배추가 무름병에 걸렸어요. 배추가 잘아요. 작년에 배추 한 포기 쪼개면 네 쪽이 나올 정도로 실했는데 이번에는 두 쪽밖에 안 나오더군요.

배추를 반 쪼갠 다음에는 절여야 합니다. 가장 힘든 일이에요. 김장하는 전날 오후, 쪼갠 배추를 소금물에 덤벙 담갔다가 뺍니다. 그다음 배춧잎 사이사이에 소금을 뿌립니다. 배추의 뿌리 부분 줄기에 많이 뿌려야 해요. 골고루 잘 절여지도록 중간에 한 번 위아래 순서를 바꿔주고 뒤집어줍니다. 절임을 잘못하면 배추가 살아나서 양념이 안 들어가고, 또 배추가 너무 절여지면 물러집니다. 김장하는 날 아침에 절인 배추를 물에 씻어요.

김장 양념을 준비합니다. 무를 채 썰고 청갓, 쪽파를 썰어둡니다. 배, 생강, 양파, 마늘, 무를 분쇄기에 갈아둡니다. 이것에다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액젓을 넣어 버무립니다. 버무릴 때 매실청을 조금 넣어요. 40년 넘게 김치를 담그니 눈대중, 손대중으로 간을 맞춰요. 보기에 너무 허옇다면 고춧가루를 더 넣어요. 그렇다고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으면 텁텁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넣는 게 찹쌀풀입니다. 찹쌀에 물을 많이 넣어 끓입니다. 찹쌀이 퍼질 때까지 끓여요. 이걸 식혀 죽처럼 걸쭉하게 된 걸 양념에 넣어요.

김장하는 날에는 수육을 삶아요. 김치와 수육을 쌈 싸 먹으면 그 맛이 별미예요.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배추된장국만 끓여 먹었어요. 이걸 한 그릇만 먹어도 속이 뜨뜻해져요.

절인 배추의 물기를 빼고 준비한 양념을 넣어요. 배춧잎 한장 한장 들춰 그 사이에 김칫소를 넣는 겁니다. 이걸 ‘케케 넣는다’고 해요. 이렇게 양념을 넣은 배추를 겉잎으로 싸서 김치통에 넣습니다. 김치를 넣고 그 위에 웃소금을 뿌려요. 절인 배추가 짜면 적게 치고 아니면 많이 쳐요. 양을 조절해 넣으면 됩니다. 김치를 마당에 2∼3일 정도 둡니다. 김치 국물이 올라올 때까지요. 시간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김치 국물이 올라와요.

김치는 얼마나 익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요. 익을락 말락 할 때 먹으면 쓴맛이 나요. 이럴 때 ‘김치가 미쳤다’고 해요. 익으려고 몸부림치는 미친 김치요. 그런데 며칠 지나면 신기하게도 맛있게 익어요. 김치는 살아 있는 생물 같아요. 푹 익으면 신맛 나는 묵은지가 되고요.

10년 전만 해도 김장철에 동네 김장 품앗이를 했어요. 하루 한 집 김장 품앗이를 돌았어요. 한 집에서 김장하면 그 집에 마을 사람 20명쯤 모였어요. 같은 재료를 써도 집집마다 김장 맛이 달라요. 그땐 다른 김장 맛을 보는 날이기도 했죠.

예전에는 땅에 김장독을 묻었어요. 저희 집이 볕이 잘 안 드는 그늘이라 서늘해서인지 “늦게까지 김장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요. 요즘에는 김치냉장고가 그 역할을 하죠. 땅에 묻은 김치는 더 싱싱하고 시원한 맛이 났어요. 비싼 김치냉장고도 못 따라갈 맛이었죠.

힘든 김장을 하고 나면 ‘올해 일 마무리했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겨울에 메주를 쑤는 일이 남았지만 이거 해놓으면 든든하죠. 김장은 겨울 반양식이라고 하잖아요.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김치로 죽을 쒀서 한 끼 식사로도 먹었어요. 그때처럼 많이 먹진 않지만 여전히 김장은 우리 식구 겨우내 먹을 귀한 양식입니다.

강옥란 1956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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