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결시생 0…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도대체 뭐기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7)



“지금까지 이런 시험은 없었다.”

대입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로서 운전면허 시험을 비롯해 토익, 공무원시험 등 많은 시험을 치러봤지만, 이렇게 평균연령이 높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결시생 제로라니. 취업과 직결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어학시험도 한 반에 2~3명은 결시생이 있었는데, 2019년 11월 2일 제29회 요양보호사 시험 중 내가 배정받은 서울 ㅈ고등학교 제38시험실에는 단 한 명의 결시생도 없었다.

올해 마지막 시험이기도 하지만, 무려 240시간에 달하는 표준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야 주어지는 응시자격은 탓인 듯했다. 이론과 실기시험, 각 60점 이상만 획득하면 합격이라 합격률은 높다 들었지만, 교육 내용이 방대해 혹여 떨어지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중앙일보

대입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로서 운전면허 시험을 비롯해 토익, 공무원시험 등 많은 시험을 치러봤지만, 이렇게 평균연령이 높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험 시작 전 질문도 쏟아졌다. [사진 pxhere]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입실한 응시생들을 보니 40명 중 3명의 남성을 제외한 대부분이 50~60대 여성. 놀라운 건 남성 3명 중 2명은 아무리 젊게 봐도 70대였다. 그중 한 사람은 시험관에게 본인이 귀가 어두우니 꼭 알아야 할 주의 사항은 칠판에 써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시험 시작 전 질문이 이렇게 많은 경우도 처음이었다. OMR 카드에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으로 답안을 표기해야 하는데, 응시생 대부분이 이러한 신문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OMR 카드를 사용해 봤지만, 답안을 고칠 때 카드를 교체하는 게 아니라 수정테이프로 틀린 것만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을 정도이니, 50대 이상에게는 두렵고 낯선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시험관들도 그러한 점을 아는 듯 질문에 천천히 친절하게 답했고, 혹여 답안지를 잘 못 기재해 불합격하는 경우를 고려해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지와 답안지가 배포되는 순간 혼란은 시작되었다. 문제지는 응시생에게 부여된 고유번호인 응시번호 맨 뒷자리에 따라 짝수형과 홀수형으로 나뉘어 배포되는데, 내 시험지가 짝수형인지 홀수형인지, 응시번호와 일치하는 것을 잘 받았는지 불안해하는 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어 ‘답안지에 표기하는 짝수형과 홀수형 표시를 잘 못 적을 경우 0점 처리되고 실격처리 된다’는 시험관의 설명에 응시생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40시간 수업 끝에 얻은 기회! 말이 쉬워 240시간이지, 하루 온종일 앉아서 듣는 수업을 한 달 가까이 출석하고 80시간 현장실습까지 마쳐야 비로소 주어지는 자격이다. 침침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는데, 홀수 짝수를 착각해 불합격될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살 떨리는 경고인가.

시험관 2명이 부지런히 다니며 40명 답안지를 모두 확인한 뒤에야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 눈으로 봐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지만 담당 시험관이 “정확하게 잘 되었다”고 확인해 주기 전엔 불안했던 모양이다.

중앙일보

주민등록번호 끝자리에 따라 홀수형과 짝수형이 구분되어 배포되고, 응시 번호는 세로로, 시험문제 답안 번호는 가로로 나열되어 응시생들이 혼선을 빚었다. 사진은 요양보호사 모의고사 답안카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험장이 잠시 조용해지는가 하더니,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가 엄습했다. 응시 번호는 세로로 내려가며 표시하게 되어 있고, 시험 문제 답안은 가로로 1~5번까지 나열된 탓에 온 혼선이다. 시험관들이 답안지를 새로 교체해주고 수정테이프로 일일이 고쳐 준 뒤에야 비로소 여느 시험장과 비슷한 적막이 시작됐다.

1교시 필기 35문항, 2교시 실기 45문항을 푸는 동안 중간에 20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침부터 긴장한 탓인지 답안을 맞춰볼 정신도 없이 졸음부터 쏟아졌다. 엎드려 잠시 쉬는데 뒷자리 응시생의 불안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이고 까다롭네. 이게 뭔 말인가?”

억양에서 중국 동포임이 느껴졌다. 어려운 용어를 읽으며 푸는 게 힘들었는지, 쉬는 시간에도 누군가와 통화하며 걱정했다. 아마도 간병 일을 하는데, 새로 옮기고 싶은 일자리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듯했다.

시험장을 나오는 길, 응시생들 표정이 밝았다. 수업은 개근했지만 시험 준비를 충분히 못 한 나도 ‘설마 60점은 받겠지’ 안심이 됐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직접 치르며 든 생각은 고령화 시대를 두려워하고 우려하지만, 그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안도였다. 2008년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서비스는 올해 요양시설이 53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고, 요양보호사도 42만 명(2018년 기준)에 달한다. 장기요양대상자 비율이 해마다 높아져 늘어나는 재정지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예산을 착복하거나 신설과 폐업을 반복하며 감사를 피하는 편법운영 사례도 적발되고, 요양보호사 인권과 처우 문제 역시 개선돼야 할 과제다.

그러나 정년 없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든, 믿을 만한 시설 부족을 우려한 가족 서비스의 목적이든 요양보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돌봄이 요구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나 역시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내 가족, 내 이웃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노인’으로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요양보호사 교재를 가정 필독서로 추천하고픈 심정이 들 정도로 꼭 필요하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상식이 많았다.

이론과 현장의 괴리 역시 존재한다. 교재와 수업에서는 정말 최후에 가서, 혹은 야간시간 대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배웠지만, 대부분 요양시설에서 와상환자(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생활하는 1,2급 환자)에게는 기저귀를(심지어 한 번에 3개씩 겹쳐 사용하는 곳도 있다) 채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제도를 만드는 이도, 이를 현장에서 운용하고 그 서비스를 받는 이도 사람이다. 함께 살아갈 이웃이고, 내 가족이다. 그 흔들림 없는 기본 바탕 속에 지속가능한 제도 운용을 위한 세심한 업그레이드 작업이 진행되어 각자 사정에 맞는 안심 돌봄 서비스가 확립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시험 합격 발표는 11월 22일, 약 한달 뒤 자격증이 나온다니, 나 자신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면 좋겠다. 설마, 김칫국 마시는 건 아니겠지?ㅋ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