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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자수첩] 네이버의 '11월 11일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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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11일 오후 2시.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가 기업 상품 홍보를 위한 키워드로 도배됐다. 실검 상위 10개 중 9개가 상업 키워드로 채워졌고, 마케팅과 연관 없는 키워드는 단 하나뿐이었다. 대체로 기업들이 퀴즈 이벤트를 열면서 정답을 맞추려는 이용자들의 검색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곧이어 일부 언론사들도 실검 상위 키워드를 활용한 기사들을 쏟아냈고, 네이버는 삽시간에 기업 홍보의 장(場)이 됐다.

잊을 법하면 나타나 말썽을 부리는 실검이다. 얼마 전에도 모바일 송금 앱 ‘토스’로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토스가 올 초부터 내놓은 ‘행운 퀴즈’로 수시로 실검에 오르내리며 "포털 이용자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준다"는 말이 나왔고, 이에 토스는 지난달 말 "새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마케팅 방식에 일부 변화를 준 것이다. 그러나 토스는 불과 2주 만인 지난 11일 퀴즈 이벤트를 통해 버젓이 실검에 또 올랐다. 다른 기업들도 마케팅 대목인 ‘11월 11일’을 맞아 앞다퉈 실검 장악에 나섰다. 실검은 기업 등 포털 이용자들의 선의만 믿고 자정을 기대하기에 어려운 실정이다.

실검 띄우기가 워낙 쉽다 보니 네이버를 둘러싸고 "실검을 폐지하라"는 주장도 빗발쳤다. 이에 대해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유저들이 관심 있는 검색어를 입력한 결과이기 때문에 여론이 어떻게 되는지를 포털이 판단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상업 키워드만이라도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어떤 키워드가 상업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검열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강조하는 네이버의 생각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포털 실검은 때때로 대중의 관심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장품 회사가 ‘1+1’ 행사를 한다든지, 보험사가 선착순으로 포인트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과연 국민 다수의 관심사와 얼마나 관련이 깊은지 의문이다. 이런 정보들은 평소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검색량이 반짝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온국민의 관심을 집중 조명받는 것처럼 둔갑한다.

상업 키워드인지를 구분하는 게 네이버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도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포털 다음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기업들이 홍보 수단으로 끌어올린 키워드를 실검에 오르지 않게 막고 있다. 또 최근 네이버는 실검을 이용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개인화된 형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관심사는 시사나 스포츠, 이벤트·홍보 등으로 분류된다. 상업 키워드를 구분지을 수 없어서 제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네이버 스스로 바로 잡을 기술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네이버가 실검 문제와 관련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인화된 버전을 내놓는 것 외에도 현재 모바일로 네이버를 띄우면 실검은 첫 화면이 아닌 뉴스, 연예, 스포츠에 이어 후단에 나오도록 돼 있다. 이용자 나이에 맞게 연령별 실검이 먼저 보이도록 한 부분에서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왜 비판이 끊이질 않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홍보 수단으로 흥행시킨 키워드는 이용자들에게 별도 표시로 광고성 키워드라고 알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정말 트렌드가 궁금한 사람들만 실검을 찾아볼 수 있게 지금보다 더 꽁꽁 숨겨두는 것도 대안이 된다고 본다. 구글의 실검인 ‘구글 트렌드’가 이 같이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는 이제 거의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공공 영역이 됐다. 민간 기업이지만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11월 11일의 오후 2시’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박현익 기자(beepar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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