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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여행은 모든 걸 멈추고 세상을 내게 덧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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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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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병률(52)을 오래 읽은 독자에겐 폭설 내리면 우두커니 창문 앞에 서 보는 습관이 있다. 2006년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 실린 한 편의 시 때문인데, 적어도 첫 문장만큼은 쉬이 잊히질 않아 혼잣말로 되뇌고야 만다. 눈 쏟아지는 날, 삶을 기억하라는 주문(呪文) 같다.

'눈은 내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했던 시절 위로 내리는지 모른다//어느 겨울밤처럼 눈도 막막했는지 모른다//어디엔가 눈을 받아두기 위해 바닥을 까부수거나 내 몸 끝 어딘가를 오므려야 하는지도 모르고//피를 돌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흰 풍경뿐이어서 그토록 창가에 매달렸는지도….'(시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 부분)

머지않아 겨울이 오고 또 눈은 내릴 터. 새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달 펴냄)를 덮고 이병률 시인에게 인터뷰를 청하자 마침 그는 네팔에 체류 중이었다. 신작 제목처럼 혼자 떠난 여행길, 글로 긴 대화를 나눴다. 질문을 보내자 "어제도 산에 올랐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이었다"로 시작하는 글이 나흘 뒤 도착했다. 왜 떠났던 걸까.

"아무한테도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놓이고 싶어서다. 낯선 곳에서 점선 같은 걸로만 연결된 느낌들…. 현실에선 너무 많은 것들로 연결돼 있고, 그 자체가 날 잡아주기에 '살아 있다'는 느낌도 받지만 여행은 모든 걸 중단하고 '무엇으로 나를 덧댈 것인가'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여행지에서 느낀 경험의 조각들이 삶의 길을 잇곤 했다. 중국 외지의 기차에서 만난 여승, 유럽 국경을 통과하며 떠올린 불온한 상상, 칼 만들어 파는 불가리아 노인이 그렇다. 그때마다 대개 그는 혼자였다. 왜 혼자였을까.

"혼자 떠나는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혼자인 것도 충분히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 거라는 생각이랄까. 어쩌면 세상은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더 많기도 하다. 그러려면 '괜찮은 혼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 사람들은 이제 '괜찮은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책의 서두에선 유독 다음 문장이 눈길을 끈다.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 여행이든 삶이든 파도를 만들고 동시에 파도 속에 들어가 파도의 안팎을 응시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어떤 '영향'을 비유한 문장이었다. 영향력이란 말과는 다른, 그저 영향이랄까.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세상을 물들인다. 자기로 향한 시선을 그만두고 사람들하고 함께 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만으로도 이미 파도는 시작된다."

과거 어느 글에서 그는 자신을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함의일까.

"함부로 했던 시간들을 이제 아끼고 있다. 시간에 쩔쩔매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시간은 그냥저냥 흘러가지 않고 조각으로 왔다가도 덩어리로 옆에 있는데, 내가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나한테 하는 대접도 달라진다는 생각도 든다."

시든 산문이든 뭔가를 쓰는 순간에 그는 무엇을 볼까. 심연에 숨겨둔 골방의 풍경을 물었다.

"많이들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평화다. 골방이란 공간이 우리를 구체적인 행복감으로 채워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평화롭게는 해준다. 난 많은 골방을 갖고 있다. 여행도 독서도 하나의 골방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만 들어 있는 방, 사람이 많이 들어가는 아주 작은 방과 또 그들과 함께하는 술(酒) 방까지도…. 모두 내겐 한 칸 한 칸의 골방일 것이다. 그곳은 비로소 내가 '정확한' 혼자가 되는 곳이다. 혼자임을 알기에 혼자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병률 시인 네팔 서면 인터뷰 전문(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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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팔에 체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풍경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네팔의 어느 도시, 어느 골목에서 이 글을 쓰고 계신지, 오늘 일과는 어떠셨는지, 어제 혹은 오늘 어떤 굉장한 일이 있었고, 무엇을 드셨는지 등등. 혹은 사건이나 인물 등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어제도 산에 올랐습니다. 쉬바푸리 나가르준(Shivapuri Nagarjun)라고 하는 네팔의 카트만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이었어요. 우리로 치면 서울의 북한산 정도 되는 산이겠네요. 서너 시간 산을 올랐어요. 정글을 연상시키는 산길을 오르니 절(Nagi Gumba)이 나오더군요. 절 도착 직전에 만난 건 정원이었는데 메리골드 꽃이 지천이었어요. 오르자마자 앉을 곳을 찾아 앉게 되었는데 어린 스님들이 바로 앞에서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점심을 거른 터라 먹을거리를 찾다가 절 안에 있는 허름한 매점에서 과자부스러기를 사서 먹는 둥 마는 둥하다가 어린 스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죠.

너댓 명의 어린 스님들은 10살도 채 안 되었는데 처음엔 누군가의 눈치를 보더군요. 아마도 엄격한 절 안의 규율 때문이었겠지요. 곧이어 서너살이 돼보이는 아주 어린 스님이 어디선가 나타났습니다. 다른 스님들하고는 다르게 '여아'라고 생각되어 다른 어린 스님들에게 이 스님은 여자 스님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 모두가 여자 스님이라는 거예요. 그제야 그곳이 비구니 절이란 걸 알았습니다.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있으니 언뜻 구분이 쉽지가 않았지요.

그 다음 저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 어린 스님의 행동이었습니다. 겨우 네 살이 됐을까 말까 한 그 어린 스님은 먹을 거 두 개가 있으면 하나는 자기 입에 넣고 하나는 다른 스님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세 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과자 다섯 조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막내 스님은 어떤 숫자의 과자를 차례로 건네도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단 하나였습니다. 먹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일 텐데 다른 모두에게 하나씩 하나씩 나눠주는 거였습니다.

이 어린 아이는 왜 이 절에 왔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 번 마음이 어린 스님의 얼굴에 베었습니다. 과자 한 상자를 사서 제가 앉았던 나무 의자에 슬쩍 올려두고 산을 내려오면서 다시 마주친 메리골드 정원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산에 힘들게 오르고 나면 그렇게 하나씩 선물을 받고 내려옵니다.

2. '왜 떠나는가'의 해답은 누구에게나 늘 명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떠나고 싶은 열망의 상태는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실현해낼 수 있느냐의 차이, 혹은 의지나 용기의 차이가 각기 다른 인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쭙자면 지금까지 수십 개의 나라, 도시로 나눈다면 수백 개의 도시를 직접 걷고 보고 느끼셨는데, 제 생각이 맞는다면, 왜 늘 떠난 상태를 유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한테도 이해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놓이고 싶어서겠죠.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는 그 무엇하고도 닿아 있지 않은 상태일 것이고, 자유롭게 놓여난 상태일 것이고 무엇도 하려 하지 않는 상태일 거예요.

낯선 곳에서 겨우 점선 같은 걸로만 연결된 느낌들, 감각들로 살고 있는 내가 오히려 인간적이겠다 싶은 거죠. 현실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로 연결되어 있고 그 자체가 나를 잡아 주고 있다는 느낌 덕분에 살아 있다는 느낌도 받지만 여행은 그 모든 걸 잠시 중단하면서 '무엇으로 나를 덧댈 것인가'를.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3. 굳이 구분한다면 '혼자'와 '홀로'는 명확하게 다른 의미인 듯합니다. 왜 산문집에서 '홀로'가 아닌 '혼자'라는 단어였을까요. 아울러 왜 혼자서만 떠나야 하는 여행이었을까요. 혼자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야 했을지, 여행 그 자체가 사람을 혼자로 만들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혼자 떠나는 게 쉬웠어요. 둘이 간다면 여행 가서도 맞춰야 할 것도 많지만 가기 전에도 여행 습관, 시기, 규모, 목적, 관심 등 맞춰야 할 게 보통 많은 게 아니죠. 만약 누구를 맞춘다는 자체가 몰입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지요. 굳이 안 챙겨 먹어도 되는 여행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느슨한 하루도 어떤 줄거리를 가져오기도 할 텐데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면 내 몫을 빼앗기는 느낌 같은 건 분명 있거든요.

혼자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혼자 해야 할 것들은 물론이고, 혼자 넘어야 할 것들이 수반되잖아요. 혼자의 여행을 통해 얻은 중요한 한 가지는, 혼자인 것도 충분히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 거라는, 어쩌면 세상은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어요. 그러려면 '괜찮은 혼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또 세상을 둘러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이제 '괜찮은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4. 이번 산문집에서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라는 문장이 와 닿았습니다. 저 문장을 조금 이어붙인다면 여행이란 한 사람이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임과 동시에 파도 속으로 들어가서 파도의 안을 들여다보는 일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이 파도를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를 여쭙고자 합니다.

어떤 '영향'을 비유한 문장인데요. 영향력이라는 말하고는 다른 그저 '영향'이요.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세상을 물들인다고 생각해요.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이나 무조건 시니컬한 사람이 뭘 일으키지는 않겠죠. 자극을 주는 사람, 경험이 있는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 따뜻함이 있는 사람… 이 모두가 파도를 만들고 있는 거죠. 자기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흔하잖아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어떤 힘도 없어요. 단지 그렇게 되기 쉬운 자기로 향한 시선을 그만두고 사람들하고 함께 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만으로도 이미 파도는 시작되고 있는지도 몰라요.

5.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시면서 '반드시 이곳에 머물겠다 혹은 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주하고 싶던 도시가 있으셨다면 어느 곳이었을까요. 혹은 어느 순간이었을까요.

이제는 그런 곳이 아주 많아서 대답이 쉽지 않을 거예요.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이 없어진 걸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더운 곳에서는 절대 못 살 것 같았는데 매일 단조로움 안에서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곳 사람들하고 섞여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요. 만약 살게 된다면 누구를 먹이는 일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 것 같아요. 적어도 요리를 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싸고 좋은 식재료가 풍성하게 넘쳐나는 곳도 문득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던 적도 많습니다. 또 언제는 가방을 내려놓고 숙소의 방문을 잠그자마자 눈물이 쏟아져서 그렇게 하도 우는 바람에 돌아올 기력을 다 우는 데 쏟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거기서 살아야하나 싶었습니다.

6. 2006년 시집 '바람의 사생활'을 기억하는 독자는, 선생님의 산문 독자보다 그 숫자는 적을지는 몰라도, 선생님의 문장을 아끼는 깊이는 보다 깊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표제시 '바람의 사생활'에서 예고/예견되었듯이 여행이란 키워드 안팎에서 선생님의 삶은 선생님의 시와 닮았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습니다. 표제시 '바람의 사생활'을 쓰시던 시간에 어떻게 그 시를 남기셨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여쭤 봐도 될까요.

결국 나는 '나'라서 고통스럽지요. 그 시에는 그 고통이 담기기도 했네요. 저의 '피'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였어요. 아무리 들여다봤자 피라는 건 과학적으로 밖엔 분석이 안 되겠지요. '이 피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부터 시작해서 '이 피를 가만히 조용히 가두라했던 건 누구의 강제였을까' 같은, 질문 앞에서 제 나름의 선언을 했던 시기였어요. 자유롭게만 살 것이다,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당차게 살 것이다 라는 선언 같은 거요. 그게 내가 시를 지키면서 사는 단 하나의 방식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던 때였어요. 그때, 마흔을 앞두고 쓴 시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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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마도 선생님의 다른 대표작을 꼽는다면 같은 시집에 실린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오랜 독자들은 '눈은 내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했던 시절 위로 내리는지 모른다'라는 문장을 매년 첫눈 혹은 폭설이 올 때마다 혼자 발음해보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주 오래 지난 일이지만 이 시를 쓰던 날의 장소, 시간, 풍경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이병률의 독자에겐 꽤 의미 있는 답변일 것 같아 여쭙습니다.

눈에 미친 사람이에요, 나는. 눈이 내린다는, 그게 폭설일 거라는 예보가 있으면 기차를 타고 먼저 그곳에 가 있는 사람이죠. 눈이 나를 세척해주는 것도, 그 기온이 나를 살짝 반쯤은 언 상태에 놓아둔다는 것도 내가 애써 노력해서는 가질 수 없는 판타지입니다.

내가 목격한 눈과 관련된 전모가 그 시 안에 들어 있어요. 눈을 맞거나 흰 눈이 쌓이고 있는 벌판을 보고 있다보면 저절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참회하는 기분이 드는 건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요. 우리는 굳이 누구의 용서를 바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고 그 용서만이 진짜일 텐데요.

8. 새 시집 출간 계획은 언제일까요. 또 새 시집 제목을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 막 쓰려고 하는 시가 다음 시집의 제목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의 제목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어서'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대부분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서 생기는 일들이 쌓이고 쌓인다… 라는 시선이 담긴 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새 시집은 일 년 안에 문학동네에서 낼 계획입니다.

9. 선생님의 어떤 소개를 보니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며'라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간을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시간은 그냥저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조각으로 왔다가도 덩어리로 제 옆에 있어요. 얼음처럼 있다가 녹기도 하고 식물처럼 자라기도 하구요. 내가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나한테 하는 대접도 달라진다는 생각이에요. 함부로 했던 시간들을 이제는 아끼고 있고 본격적으로 즐기고 있기도 하고 그래요. 시간에 쩔쩔매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돼요. 새로운 것들로 주변을 채울 수는 없을 거예요. 시간의 물이 든 사물들, 사람들, 입자들… 사실 그런 게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죠. 재미있는 것은 지금 제가 있는 이곳 네팔의 시간은 15분 단위의 차이를 보입니다. 인도와 나란히 있지만 인도보다 15분이 빠르고 한국보다 3시간 15분이 늦고… 모든 세계 시각 기준에서 튀지요. 그게 인도보다 15분 먼저 살고, 15분 뒤지지 않겠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요.

10. 마지막 질문입니다. 흔히들 골방이라고 표현하지요. 뭔가를 쓰는 순간의 골방,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어떤 내면의 장소라고 해야 할까요. '시인 이병률'이 마주하는 골방의 풍경을 말씀해주신다면.

많이들 행복하기 바라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평화라는 생각이에요. 골방이라는 공간이 우리를 구체적인 행복감으로 채워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평화롭게는 해주죠. 저는 제 안에 골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골방을 용도에 따라 골라 쓰지요. 여행도, 독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들어 있는 방, 아니 사람이 많이 들아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방, 그들과 함께 하는 술 방… 모두 제게는 한 칸 한 칸의 골방이죠. 자신의 쓰레기를 받기도 하고 눈물을 말리기도 하는, 비로소 정확한 혼자가 되는 곳이죠. 그렇게 혼자임을 알 때 우리는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서, 혼자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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